류승룡 "내 인생 닮은 광대역 처음…재밌으면 배역 안 가려"
입력
수정
지면A32
9일 개봉 판타지호러 '손님'서 주연 맡은 배우 류승룡비언어극 ‘난타’ 출신 배우 류승룡(45·사진)은 배우로는 늦은 편인 마흔 줄에 전성기를 맞았다. 2011년 청나라 장군 쥬신타 역으로 나선 영화 ‘최종병기 활’(747만명)이 흥행에 성공한 뒤 주연 혹은 조연으로 출연한 ‘광해’ ‘7번방의 선물’ ‘명량’ 등 3편의 영화가 모두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광해’에서는 광해의 최측근 신하, ‘7번방’에서는 살인 누명을 쓴 바보 아버지, ‘명량’에서는 왜장 구루시마 역을 맡았다.
악조건과 싸우며 촬영 마쳐
多作 비판은 오해
연간 1~2편에 역량 집중
오는 9일 개봉하는 판타지 호러 ‘손님’에서 그는 동네 쥐를 끌고 다니는 피리 부는 광대 우룡 역으로 돌아온다. 독일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프로 한 이 영화는 1950년대 어느 산골마을에서 나그네 우룡이 아들과 함께 잠시 머무르는 동안 촌장(이성민 분)이 마을의 쥐떼를 퇴치하면 목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쥐가 사라지고 나서 돌변한다. 6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처음에는 어디서 본 듯했어요. 그러나 3분의 1을 지나니까 새롭고 독특한 작품이란 걸 알겠더군요. ‘피리 부는 사나이’를 한국 산골로 가져오니까 이질감이 있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약속의 소중함이죠.”
영화는 타인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부메랑을 맞는지 끔찍한 방법으로 풀어놓는다. 류승룡은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짧은 시간 내에 극대화해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실제 내 인생과 닮은 광대 역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극 중 광대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감정의 노동을 겪는다.
“완성작을 보니까 언제나처럼 제 연기가 아쉬웠어요. 하지만 의도한 대로 영화가 나온 것에는 만족합니다. 이 배역을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때만큼 집중력이 안 생길 것 같아서요. 강원 평창, 양양, 정선 등에서 촬영하는 동안 온갖 벌레들과 짓궂은 날씨 등 악조건을 이겨냈으니까요.”1000만명을 모은 영화에 3편이나 출연한 비결을 물었다. “흥행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해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이야기와 배역이 재미있어서 출연했는데 결과가 좋았던 거죠. 배우가 된 것도 이렇게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서였어요.”
그는 평범한 용모를 지닌 자신이 광고에 출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통신회사 한 곳과 배달업체 등 단 두 편의 광고에 출연했는데 워낙 많이 방송되니까 어떤 분들은 저를 ‘물질만능주의자’라고 오해합니다. 또 다른 분은 제가 사진 촬영에 응해주지 않았다고 댓글을 올렸고요. 정말 억울합니다.”
류승룡이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다작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1년에 1~2편에만 출연하는데 흥행이 잘되니까 극장에 오래 걸려 있었을 뿐”이라며 “올해에도 두 편만 개봉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최고 몸값을 받는 스타 반열에 들었지만 ‘명량’에선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다.“국내 배우들은 장르와 비중에 집착하는 경향이 유독 심합니다. 구루지마 역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저는 이순신 역 최민식 선배와 대결해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된다는 게 영광이었어요. 일본군 장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5년간(1998~2002년) ‘난타’ 무대에 섰다. 비언어극에서 추임새만 하다 보니 대사 연기가 하고 싶어져 그만뒀다고 한다. 이후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3년간 막노동을 하면서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2005년)의 조연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난타 시절 5년간 각국을 돌며 같은 공연을 하다 보니 새 환경에 빨리 적응하면서 상대역과 타이밍을 맞추는 훈련을 했어요. 그게 요즘 영화 연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