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인문학자 에라스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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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개신교 종교개혁의 씨를 뿌린 것은 에라스뮈스, 수확한 것은 루터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의 왕자’라 불린 네덜란드 출신의 성직자 겸 인문학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에 대한 후세의 평가다. 그는 부패한 가톨릭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마르틴 루터의 급진적 개혁엔 반대하는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라스뮈스는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았다. 네덜란드에선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을 비롯해 건축물과 지명 등 여러 형태로 그를 기린다.에라스뮈스는 146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흑사병으로 부모를 잃고 수도원에서 자랐으며, 1492년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신학과 문학 등 다방면에 해박했다. 특히 1509년 쓴 ‘우신예찬’을 통해 성직자의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루터는 에라스뮈스에게 자신의 종교개혁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지만 에라스뮈스는 거절했다. 가톨릭의 틀 안에서 폐단을 고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에라스뮈스는 1536년 7월12일 스위스 바젤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