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10년…미리 보는 인재포럼] 고촉통 前 싱가포르 총리"영어 공용화로 우수인재 유치…능력주의가 싱가포르 발전 원동력"

글로벌 인재포럼 2015 11월 3~5일

인터뷰 - '싱가포르의 기적' 이끈 고촉통 前 싱가포르 총리

싱가포르의 영어 공용화 정책…경제 발전·해외인재 유치 큰 힘
한국도 다양한 인재 포용해야

국민에 신뢰받는 정부 되려면 원칙과 핵심 가치 항상 지켜야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 싱가포르를 소개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목에 있는 데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절묘하게 녹아 있어서다. 유교적인 문화가 남아 있어 도덕성과 예를 중시하면서도 능력에 따라 대우해주고 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합리성을 갖췄다.

작은 항구도시이던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허브’로 성장했다.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가 그 중심에 있었다. 고 전 총리는 오는 11월3~5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5’에 참석, 4일 기조연설(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교육)을 통해 싱가포르의 발전 비결을 들려준다. 고 전 총리는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만약 싱가포르가 단일민족 국가로 출발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인재를 일찍 받아들이지 못했고, 경제발전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서울과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도 이제 글로벌 대도시로서 많은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지만 다양한 인재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계속 배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싱가포르가 해외 우수인재를 유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영어 사용입니다. 어떤 나라에서 오든 쉽게 말이 통합니다. 둘째는 생활 주거 환경입니다. 우수 인재는 안전하면서도 깨끗하고 놀거리 볼거리가 있는 곳에 살고 싶어합니다. 싱가포르는 높은 빌딩이 많은 대도시지만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을 자랑합니다. 비행기로 1~2시간 안에 동남아 관광지로 갈 수 있습니다. 셋째는 쉽게 동화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은 외부인이 아니라 준(準)싱가포르인이나 다름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영어공용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싱가포르의 경우엔 확실히 영어 사용이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해외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많은 투자를 했고 공장과 가게들이 생겨났습니다. 영어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중국의 부상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재를 확보해야 합니다.”
▷싱가포르는 치열한 경쟁 속에 소수 정예만이 대학에 가는 엘리트 교육으로 유명합니다. 각종 교육 성과지표에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요.

“싱가포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수학과 읽기 모두 세계 3위 내에 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는 것은 싱가포르 교육의 목적이 아닙니다. 모든 아이들을 각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로 만들고 이를 통해 싱가포르가 계속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공용어인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 영어 중에서 영어를 기본으로 포함해 두 개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대학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또 대학에 가야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싱가포르는 일찍부터 기술 교육, 직업 교육 과정을 마련해두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진로를 제공합니다.”
▷한국에선 개인의 능력보다는 명문대 간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능력주의는 싱가포르가 중시하는 기본가치로 싱가포르 발전의 토대입니다. 출신이나 집안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싱가포르인은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능력주의가 비판받는 것은 더 많은 자원을 쏟아부은 부잣집 자녀가 그렇지 않은 자녀를 앞서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한 세대, 두 세대가 지나면 출발선 자체가 달라져 버립니다. 그것은 정부가 나서야 할 부분입니다. 환경이 어려운 학생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또 다양한 진로를 제공해 공부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싱가포르가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았는데 다음 50년의 번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굳건하고 효율적인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정부는 장기 비전을 갖고 정책을 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의 신뢰와 지지라는 바탕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장기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가 어떻게 신뢰받는 정부를 구축했는지 궁금합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는 굳건하고 정직하고 실력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미래의 변화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하고, 모든 싱가포르인이 국가 발전에 참여하고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소속감을 줘야 합니다. 이런 원칙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성공적인 정부가 되려면 그 나름의 원칙과 핵심 가치를 갖고, 그것을 항상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의 부상은 주변국에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최근 중국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은 계속 발전하고 성장할 것입니다. 이웃 나라는 중국의 성장에 혜택을 받으면서도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본은 언제나 같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를 확보해야 하고, 힘 있고 부패하지 않은 정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업과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유지해야 합니다. 싱가포르는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세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앞으로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지요.“많은 도전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해진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 긴장감을 높이고 있고, 테러단체의 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기술 변화로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란 우려도 높습니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나는 세계의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국가 간 갈등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범죄나 기후변화협약, 인도적 지원에서 보듯 국제협력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술도 잘만 활용한다면 많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