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주택개량 벽돌이 내 그림의 자양분"

류하완 씨 10월 2일까지 개인전
류하완 씨의 ‘회상(Flashback)’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양화가 류하완 씨(52)에게 그림은 꿈과 현실, 일탈과 일상, 우연과 필연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일기장 같은 것이다. 유년시절의 경험을 반추하며 익숙한 감정들을 화면에 쏟아내 자신의 상실과 허탈함을 치유하고, 그 과정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의 소재를 주로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몽환적인 풍경을 그리는 류씨가 다음달 2일까지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롯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숙명여대 미대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붓질과 테이프 작업으로 도시와 시골 풍경을 화면에 담아왔다. 최근에는 3차원 입체모형의 작은 색면으로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플래시 백(Flashback·회상)’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사물의 재현 같은 시각적 연출보다 마음의 눈에 비친 도시, 농촌의 풍경을 그린 근작 40여점을 걸었다. 알록달록한 사각형 색면과 비정형의 얼룩들이 어우러져 묘한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이다. 그동안 기억을 통해 보이는 풍경들이 자신의 내면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그런 고민 끝에 찾아낸 또 다른 세계를 추구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어린 시절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빨간 벽돌로 주택을 개량하는 것을 보고 자란 작가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옛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소리, 바람과 물, 향기, 흙냄새까지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그리기보다는 만들어간다는 류씨는 캔버스에 테이프를 붙이고 아크릴 물감을 쏟아부어 말리는 ‘발효의 과정’을 거친다. 기본적으로 캔버스에 아크릴을 사용한 그림이지만 제작 과정에서는 현대적인 재료를 두루 활용한다. “캔버스에 테이프를 붙인 뒤 칼로 드로잉을 합니다. 여기에 아크릴 물감을 부으면 칼이 지나간 틈에 색깔이 스며들어 마치 사각형의 색면 같은 게 나타나죠. 이런 과정을 8~10차례 반복한 뒤 테이프 조각을 떼 내면 색면과 얼룩이 어우러져 아련한 풍경이 연출됩니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전체를 붓으로 쓸어내 질감을 살려내지요.”30년간 쉼 없이 화필을 잡은 작가는 이제야 예술세계에 눈을 떠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림에 철이 드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요.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니 할 게 많아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예요. 대문호 톨스토이가 죽기 얼마 전에 쓴 일기에 ‘이제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고 적은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아요.” (02)771-2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