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시장'에 갇힌 국회] 정부 "무역이득공유제는 위헌"…"그래도 도입하자"는 여야

정치권, 내년 총선 정국 다가오자 포퓰리즘 행보

야당 이어 새누리도 도입 검토로 입장 바꿔
산업부 "과잉금지 원칙 위배·이중과세 소지"
국회 한·중 FTA 비준시 '볼모' 될 수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역이득공유제 등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어촌 피해 대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라 이득을 보는 수출업체 등으로부터 이익 일부를 환수해 피해 농어민을 지원하자는 ‘무역이득공유제’에 대해 정부가 21일 “헌법 위배 소지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일부 국회의원이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무역이득공유제는 FTA에 따른 기업들의 이익을 정확히 산출하는 게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중과세 우려도 있어 도입 자체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반면 이날 여당인 새누리당은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무역이득공유제에 반대하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농어민 표를 잡기 위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정부 “무역이득공유제 위헌 소지”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무역이득공유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입법화하기 쉽지 않다’는 내용의 정부 합동연구용역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용역은 산업부가 지난 5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비롯해 산업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4개 국책 연구기관에 의뢰한 것이다.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한·호주 FTA 비준 때 무역이득공유제가 논란이 되자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줘 한·중 FTA 비준 때 논의하기로 국회와 합의했다.연구기관들은 무역이득공유제는 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기관들의 도입 불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농어민과 무역업계를 차별 취급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둘째 기업 이익이 FTA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들었다. 셋째 기업들은 이미 이익에 대해 세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이중과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 차관보는 “제도 자체는 이상적이지만 연구용역 결과상으로는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며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한 외국 사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기관들은 “FTA에 따른 피해 농어민들은 무역이득공유제가 아닌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는 게 정상”이라며 “FTA 피해 지원이 부족하다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원 제도를 개선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총선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새누리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역이득공유제를 적극 검토하라는 김무성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장우 당 대변인은 “비공개회의에서 한·중 FTA와 관련해 농어촌 지역에 대한 피해 대책을 강구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역이득공유제 관련 논의가 있었다”며 “어떤 식이든 농어촌 지역에 대한 대책을 당 차원에서 적극 검토하라는 (김무성) 당 대표의 말씀이 있었다”고 공개했다.

무역이득공유제에 대한 새누리당의 당론은 지금까지 ‘도입 반대’였다. 지난달 31일 새누리당 단독으로 한·중 FTA 비준안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상정하면서 김정훈 정책위원회 의장은 “야당이 무역이득공유제 법제화를 주장하지만 한·중 FTA로 인한 산업별 손익을 산출하기 어렵다”며 “농어촌특별세 부과 역시 이중과세와 FTA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달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같은 의견을 말했다.

그러던 새누리당이 이날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검토로 선회한 것은 내년 총선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선 최근 선거구획정 과정에서 지역구가 줄어들 농어촌 지역을 겨냥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 대표는 지난 17일 선거구 축소를 항의하려고 국회를 방문한 농어민들을 만나는 자리에 무역이득공유제를 대표 발의한 홍문표 의원을 배석시키기도 했다.일각에선 한·중 FTA의 국회 비준을 앞두고 농촌 지역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협상용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때문에 한·중 FTA 국회 비준 과정에서 무역이득공유제가 볼모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재후/박종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