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파고를 넘어 도약하는 금융사] '핀테크 플랫폼' 개방…금융영역 무한 확장

인터넷은행 출범 눈앞…금융 패러다임 바뀐다

금융사의 위기와 도전
농협은행 등 오픈플랫폼 통해 70개 핀테크사에 코드 개방
기존 상품·서비스 가격파괴…신규 금융 수요 창출 가능
한국카카오은행 주식회사 발기인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자녀를 위한 드론을 구입하려는 김성남 씨. 원하는 물건을 고른 뒤 밑에 있는 ‘결제하기’ 버튼을 누른다. 과거엔 해외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복잡한 절차를 거쳐 사용해야 했지만 이젠 이런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김씨의 국내 은행 계좌와 아마존 시스템이 연계돼 결제가 손쉽게 이뤄진 덕분이다.

금융업의 변화가 가져다 줄 가까운 미래 모습이다. 핀테크(금융+기술)라는 큰 물결을 타고 금융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손안의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 라이프’를 빠르고 손쉽게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이 흐름의 요체다. 삼성전자, 구글, 애플, 알리바바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글로벌 강자들마저 금융산업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격화되고 있다.○변화하는 금융환경

그동안 금융은 소비자들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은행에 통장을 계설하지 않고선 금융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민 대다수가 가까운 은행을 동네 사랑방처럼 찾아갔다. 가장 많은 계좌를 보유한 농협은행만해도 작년 말 기준 총 계좌 수가 3785만개에 달한다. 중복 가입을 감안하더라도 성인 대부분이 농협 통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 말로 플랫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은행만큼 가입 소비자가 많은 곳도 드물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컴퓨터 뺨치는 성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원주민’이라고도 불리는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은행을 ‘더운 여름날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장소’ 정도로 인식한다. 증권사 객장도 썰렁해지긴 마찬가지다.이 틈새를 새로운 도전자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SK텔레콤, KT 등 통신사를 비롯해 카카오, 인터파크와 같은 지금까진 금융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던 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안에 인터넷전문은행 한두 곳에 대한 예비인가를 내주기로 한 만큼 내년이면 지점 없이 온라인으로만 운영하는 은행이 등장하게 된다.

증권사 ‘텃밭’도 도전받고 있다. 옐로우금융그룹이란 신생 업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인공지능 자산운용 기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920조개에 달하는 국내외 금융정보를 분석해 개인들에게 저렴한 수수료로 최적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금융회사가 맞은 위기와 기회새로운 도전자들은 기존 금융회사들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다. 인터넷전문은행만해도 계좌를 더 이상 은행이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 수많은 벤처 및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시스템을 개방해 언제든 가져다 쓰도록 열겠다는 것이다.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애플식 생태계를 금융업에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소비자가 찾아오도록 하는 것 외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까지 설계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낸다. 상품과 서비스도 훨씬 다양하며, 온라인을 통해 모든 것들을 비교해 줘 ‘폭리’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전문가들은 기존 금융회사들이 이 같은 흐름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농협은행을 비롯 은행들이 ‘핀테크 오픈 플랫폼’을 시작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농협은행은 이미 70여개의 핀테크 회사들에 계좌이체, 잔액조회 등 각종 기능의 핵심 코드를 가져다 쓰도록 개방했다.향후 농협 계좌를 아마존과 연계시키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업체가 생긴다면 농협 소비자는 매우 간편하게 아마존에서 해외 직구(직접 구매)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윤완수 웹캐시 대표는 “은행도 핀테크를 잘만 활용하면 모든 소비생활에 금융을 결합시킴으로써 은행 영역을 더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약 3500만명의 회원 수를 거느린 카카오톡이 ‘혁신적인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농협 3700여만계좌도 잠재력이 풍부한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존의 강자들이 최근의 흐름을 거부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도전자들이 기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파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가 만일 출현한다면 이들은 계좌이체 수수료를 무료로 함으로써 소비자를 끌어들일 가능성도 크다. 신용카드사들의 최대 수익원 중 하나인 카드론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신용등급 5등급 이상도 연 10%대에 신용대출을 해주겠다는 게 인터넷전문은행의 전략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 등 핀테크 발달은 가격 파괴와 함께 새로운 상품 개발로 신규 수요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