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어린왕자', 다채로운 몸짓으로 풀어낸 '어른 동화'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자 반짝이는 별무리가 무대 벽면을 덮었다.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김지민 분)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독무를 선보이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 나타났다. 이어 무용수 11명이 매혹적인 춤을 추는 장미(한상률 분)를 둘러싼 채 바닥에 누워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바람이 일렁이며 꽃을 흔드는 풍경이 붉은 장미 영상과 함께 펼쳐졌다.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미리 본 국립현대무용단 ‘어린왕자’(사진)의 한 장면이다. 오는 9~1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하는 이 작품은 생텍쥐페리의 동명 소설을 소재로 삼아 간결하고 함축적인 원작 속 일화들을 현대무용으로 펼쳐낸다. 안무를 맡은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현대무용을 어렵게 여기는 일반 관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했다”며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작품을 쉽게 풀어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라고 소개했다.어린 왕자가 만난 장미, 여우, 여러 행성 사람들 이야기가 교차하며 작품의 줄거리가 이어진다. 여러 장르의 춤을 섞어 장면마다 각각 다른 특징을 강조했다. ‘술고래의 별’에서는 무용수 10여명이 곡예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준다. 대형 풍선으로 만든 버블슈트를 입고 무대에서 이리저리 구르거나 고무공을 굴리며 휘청대다 서로 부딪치기도 한다. ‘왕의 별’ 에서는 무용수 세 명이 스트리트 댄스를 연상케 하는 춤을 추며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을 활용했다. 음악가 정재일 씨가 음악을 맡았다. 영화 ‘장화홍련’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을 만든 김지운 감독이 영상과 무대를 연출했다. 김 감독은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처럼 ‘현재를 사는 우리도 어른이라는 세계에 불시착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영상으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장면을 연출해 생경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영상 속 무용수가 실제 무용수와 함께 춤을 추는 부분이 그 예다.

공연이 볼거리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불시착한 사막은 현대인이 사는 도시의 은유다. 막바지에 한 무대에 모여 함께 춤을 추는 여러 행성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낯선 이들을 상징한다. 안 예술감독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남과 이해를 통해 공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작품의 주제”라며 “편하게 보면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재미가 있고, 진지하게 본다면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