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형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38년 경찰, 가장 싫었던 말 '나중에'…지금 움직여라"

'공부하는 엄마…' 책 낸 이금형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고졸여경에서 치안정감까지
세 딸 모두 '엄친딸' 키운 비법?
그냥 부모가 공부하면 됩니다
직장생활, 적극적으로 설쳐라
지난달 말 종영한 TV 드라마 ‘미세스캅’. 배우 김희애 씨가 ‘엄마 경찰’ 역을 열연하면서 15%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새삼 주목받은 사람이 있다. 엄마이면서 경찰 역할을 잘해낸 ‘원조 미세스캅’ 이금형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사진)다. 지난해 말 부산지방경찰청장을 끝으로 제복을 벗은 이 교수가 최근 책을 냈다. 제목은 ‘공부하는 엄마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알에이치코리아), 세 딸을 수재로 키운 비결과 함께 고졸 여경에서 치안정감에 오르기까지의 38년 경찰생활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근황과 함께 책을 낸 계기부터 물었다. “40년 가까이 저를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요. 어쩌면 처음으로 딸, 며느리 노릇 하는 거죠. 책을 쓰게 된 것은 ‘엄마 경험담을 세상 사람에게 좀 나눠주라’는 첫딸의 성화에 못 이겨서예요.”전체 경찰 10만2000여명 중 6명(치안총감 1명·치안정감 5명). 순경으로 시작해 치안정감 이상이 될 확률은 산술적으로 0.0059%다. 그것도 고졸 여성으로 이뤄낸 입지전적인 기록이지만 이 교수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자식농사’ 때문이다.

신세계 이마트 부사장을 지낸 이인균 씨가 남편이다. 세 딸은 이른바 ‘엄친딸’이다. 첫째와 둘째는 모두 한성과학고와 KAIST를 나왔다. 첫째는 22세 때 행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해 방송통신위원회 서기관으로 근무 중이고, 둘째는 미국 하버드대를 거쳐 현재 코넬대에서 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셋째 역시 이화외국어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뒤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할 필요 없어요. 자식들이 책을 보게 하려면 엄마가 책을 보면 됩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잖아요. 승진시험 때는 공부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해 주말에는 딸들을 사무실로 데려가 같이 공부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습관이 들었고, 아이들이 학창 시절 내내 공부하는 게 가장 쉽다고 말할 정도였죠. 주변에서 눈총 많이 받았을 거예요.(웃음)”한 번의 특진 없이 한 단계씩 밟아 꼭대기까지 올라간 인생 선배로서 여경뿐만 아니라 여성 직장인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직장은 일하기 위해 모인 곳이잖아요. 일만 하면 됩니다. 집에서 엄마라고 직장에 와서까지 엄마여선 안 되죠. 주변 시선에 신경 쓰지 말고, 욕먹는 것 두려워 말고, 적극적 사고로 ‘설친다’는 이야기를 듣겠다는 각오가 성공 비결이랄까요.” 여상을 졸업하고 화가를 꿈꾸다 가정형편 때문에 순경이 돼 경찰조직 정상까지 올랐던 이 교수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업(業)의 특성상 회의를 자주하는 기자를 뜨끔하게 하는 한마디도 있었다. “경찰생활 내내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나중에’였어요. 회의가 잦기도 했지만 회의 말미에 꼭 나오는 말이 ‘나중에 정리해 보고하겠습니다’였죠. 기다려도 안 오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면 ‘깜박했다’ ‘다른 급한 일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죠. 나중에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하는 게 중요합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