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일본 가부키·중국 경극, 한국 전통극은 떠오르나요" 홍성덕 국악협회 이사장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인터뷰
"정부 지원 절실…국악회관 건립 꿈"
<대담 최인한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겸 한경닷컴 뉴스국장>
/ 변성현 기자
[ 김봉구 기자 ] 일본의 전통극은 뭘까? 가부키다. 중국은? 경극.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통극은?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질문을 던진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사진)은 “우리에겐 여성국극이 있다. 가부키나 경극 못지않은 최고의 브랜드”라고 힘줘 말했다.가부키와 경극엔 공통점이 있다. 두텁게 분장한 남성이 여성 역할까지 한다. 여성국극은 반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이 남성 역할도 맡는다. 화려한 의상과 분장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가미됐다. 1950년대 초 창극의 한 갈래로 인기를 얻었지만 TV와 영화에 밀려 시들해졌다. 홍 이사장은 침체에 빠진 여성국극의 부흥을 이끈 장본인이다.

이달 초 서울 종로의 국악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홍 이사장은 “여성국극을 우리의 ‘소울 브랜드’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가 1980년대 창단한 서라벌국악예술단은 금세 대박을 터뜨렸다. ‘성자 이차돈’을 국립극장 대극장에 올려 최초의 매진 사례를 이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축하공연 작품으로도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공연 ‘별 헤는 밤, 윤동주’, 2002년 한일월드컵 축하공연 ‘자유부인’ 등 굵직굵직한 무대에 빠지지 않고 선보였다. 전통극이지만 사회 변화에 맞춰 새롭게 각색해 내놓는 노력이 더해졌다.해외 무대에서도 호응이 뜨거웠다.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황진이’ ‘춘향전’ ‘뺑파전’ 등을 50여회 공연하면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홍 이사장은 “K팝처럼 국악한류 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를 위해 정부 지원과 민간 차원의 관심을 당부했다. 그는 “요즘 한류다, 문화콘텐츠 산업이다 해서 떠들썩한데 의외로 국악 관련 예산과 인프라 지원은 부족하다. 많이 아쉽다”면서 “단지 우리 것이니 보존하자는 차원이 아니다. 제대로 투자하고 밀어주면 엄청난 문화·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첫 걸음이 오는 8일 대한민국 국악제 필리핀 공연(UN 창설 70주년 기념공연)이다. 국악협회 주최, B.J.H 컴퍼니 공동주관으로 현지 마닐라 리잘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필리핀을 시작으로 국악제 해외편을 연속 기획해 각국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세계에 우리의 전통예술을 전파해 국악한류로 이어나간다는 취지다.
/ 변성현 기자
홍 이사장에게 국악은 태생적 운명이었다. 전라도 민요 육자배기의 대가였던 김옥진 명창이 어머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자연스레 가락이 삶에 스며들었다. 소싯적부터 판소리를 배워 명창 반열에 오른 그는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들었으니…”라며 웃었다.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을 수상한 딸 김금미 명창, 판소리 하는 외손녀 박지현까지 4대가 국악인 가족이다.

“저희 땐 고생 많이 했어요.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산골짜기에 들어가 몇 년씩 소리를 배웠습니다. 해만 지면 부모 생각이 나 울었죠. 안 울려고 소리 시작하고. 정말 모든 걸 다 바쳐 소리를 했어요. 그러니 명인도 많이 나왔죠. 지금은 소리 공부하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큰 소리꾼이 안 나오잖아요. 이대로 가다간 우리 소리의 맥이 끊길 것 같아 두려워요.”그는 “판소리에 선생님들이 몇 분 안 계신다. 돌아가시고 나면 뒤를 이을 제자들이 차고 들어와야 하는데 안 보인다”고 걱정했다. 이어 “북한은 판소리 맥이 끊겼다. 자칫 우리도 그런 상황이 될까봐 걱정되고 수시로 조급해지는데, 한편으로는 후배들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홍 이사장은 젊은 국악도들을 채근하기에 앞서 미안한 감정부터 든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신 있게 무대에 설 수준이 안 되는 겁니다. 생활을 위해 레슨,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보니 공부가 부족한 거죠. 우리 소리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수십년 배워 득음해야 하잖아요. 가능하다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후학들이 소리 공부에 전념하게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국악행정가로서 공연기회 제공에 발 벗고 나선 이유다. 그는 2012년 이사장 취임 후 서울시와 손잡고 국악인턴제도를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도 협조해 국악과 졸업생 50~60명이 인턴을 하고 있다.

다음 단계는 국악회관 건립이다. 홍 이사장은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했다. 국악을 마음껏 펼쳐 보일 공간이 없다는 문제의식의 발로다.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예술의전당 등이 있지만 정작 전통예술 전용무대는 전무하다. 대부분 서양식 공연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탓이다. 가부키와 경극이 전용극장을 두고 전통의 맥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과 대비된다.

특히 정치권의 국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역설했다. 그는 “제가 김대중 대통령께 장구, 꽹과리를 가르쳐드렸으니 어찌 보면 선생과 제자라 할 만큼 친밀한 관계였다. 그럼에도 당시엔 행정가가 아니어서 국악계 지원을 부탁할 생각을 못한 게 무척 아쉽다”고 회고했다.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 경제도 살아요. 별개가 아니예요. 우리 문화가 풍성해지면 나라도 부강해진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정치인들도 맞는 얘기라고는 하는데, 실현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웃음) 정치권부터 필요성에 공감해 열심히 밀어줬으면 합니다. 국악은 K팝, 한류를 뛰어넘는 최고의 국제적 브랜드가 될 수 있거든요.”['넥스트 차이나' 로컬·R&D·혁신으로 뚫어라] [LG유플 "SKT, CJ헬로비전 인수 갈길 멀다…공정경쟁 의문"] [현대차, 제네시스 브랜드 시장 안착…에쿠스 후속 'G90'에 달렸다] [폭스바겐 나홀로 직격탄?…수입차 디젤 판매 영향 적어] ['요양사업 18년차' 日전자업체 파나소닉의 비전]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