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정번호 없애고 새 번호체계 만들자"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 개선안 발표
문화재청 "내년 대안 마련할 것"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에 일련번호를 붙이는 대신 종류, 유형, 소재지 등을 코드화해 새로운 번호 체계를 확립하자는 대안이 제시됐다.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은 지난 6일 문화재청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지정되는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데도 적지 않은 사람이 낮은 번호일수록 더 가치 있는 문화재로 오해하는 게 현실이다.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대표적이다. 2008년 숭례문이 소실되면서 더 이상 ‘국보 1호’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제1호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현행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국민의 문화재 인식에 혼란을 주기 때문에 아예 지정번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문화재청은 지난 3월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에 연구를 맡겨 개선안을 모색해 왔다.이날 공청회에선 두 가지 개선안이 제시됐다. 이은하 한국문화재정책연구원 정책연구팀장은 “대내외적으로 새로운 관리체계를 부여하거나, 현행 지정번호를 외부에 표기하지 않고 내부 관리용으로만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지정번호를 폐지하고 새로운 번호 체계를 확립할 경우 문화재 종류, 문화재 유형, 소재지, 지정 순서 순으로 코드를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에는 ‘01(국보)03(유형)11(지역)0005(지정순서)’라는 번호를 붙이는 방식이다.

지정번호 제도를 바꿀 때 발생하는 비용과 편익을 분석한 정헌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정번호를 개선할 경우 안내판, 홈페이지,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교과서를 고치는 데 적게는 133억원에서 최대 451억원이 든다”며 “제도 개선으로 얻는 편익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날 제시된 개선 방안에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26개의 ‘가지 번호’가 붙어 있는 안중근의사유묵(보물 제569호)은 개선 방식으로 코드를 부여하면 코드 번호가 중복되거나 소장 지역에 따라 번호가 바뀌는 등 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개선 방안에 나온 6가지 유형의 분류로는 문화재 종류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너무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코드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문화재청은 연구용역 결과와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 등을 종합해 내년에 정책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