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인생 40년…"공감과 소통의 잔치 열어요"

13일 동생·딸과 함께 무대 서는 왕기철 명창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소년은 소리꾼인 큰형을 따라 1976년 상경했다. 15세 때 박귀희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처음에는 그저 숙식할 곳이 생긴 것이 좋아 별생각 없이 판소리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 점점 소리에 빠져들었다. 생계가 어려워 13년간 서울예고 국악 교사로 일하면서도 계속 무대를 꿈꿨다. 1999년 소리를 시작한 지 23년 만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굵직한 주연을 연이어 맡았다. 공연과 교육현장을 오가며 국악을 전파하는 왕기철 명창(56·사진)이다. 13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소리인생 40년’ 기념 무대를 여는 그를 만났다.

“흥보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가 있다면 제겐 소리가 있습니다. 꿈을 이루고 늘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힘든 때도 많았지만 되돌아보면 마디마디 버티며 소리를 다듬어온 매 순간이 참 고마워요.”그는 “40년 소리 인생을 되돌아보며 절친한 선·후배, 친구들과 함께 풍성한 잔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안숙선·윤진철·남상일·장문희·박애리 명창과 김규형·조용수 명고수, 최종실·박종필 명무 등이 모여 국악 마당을 연다. 소리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동생 왕기석 명창(54)과 딸 윤정씨(28)도 무대에 오른다. 명창 형제는 흥보와 놀보가 되어 ‘흥보가’를 부르고, 딸과는 ‘심청가’ 중 심 봉사가 눈 뜨는 대목을 공연한다.

“가족과 함께 무대에 서면 감정과 표현이 훨씬 깊어집니다. 심청전이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잖아요. 부녀의 무대가 애틋할 수밖에요. 지난해 딸과 함께 심 봉사 눈 뜨는 장면을 연기할 때는 온 마음을 다 쏟았어요. 저도 울고, 딸도 울고, 관객도 눈물을 흘리는데 그 순간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왕 명창은 “40년간 소리를 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말했다. 판소리는 공감과 소통의 예술이기에 소리꾼이 혼자 노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흥보가에서 흥보가 박을 타는 부분이 있습니다. 관객과 함께 박을 탄다는 마음으로 눈을 맞추며 ‘시리렁 시리렁’ 소리를 하다 보면 관객 표정이 달라져요.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 관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깨가 들썩이고 입모양도 가사를 따라 하죠. 흥보가 보물을 받는 순간, 관객의 마음도 부자가 됩니다. 그 순간 정말 가슴이 벅차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희망과 행복을 나누는 거죠.”

왕 명창이 국악 교육과 전파에 힘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립 전통예술고에서 예술부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주 수요일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소리 수업을 한다. 국악 애호가로 잘 알려진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2주에 한 번 판소리를 가르친다. 이번 공연에는 다문화 가정과 탈북 청소년 등 문화소외계층 관객 100여명을 초대했다.

“국악에는 우리 문화와 정서가 모두 녹아 있어요. 그만큼 우리가 배우고 얻어 갈 것이 많지요. 너무나 소중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습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전통 음악을 듣고 배울 수 있도록 최대한 돕고 싶습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