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좀 없으면 어때, 두툼한 갈비에 소주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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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E5
박찬일 셰프의 백년식당 이야기우리에게 서서 먹는 음식은 생소하다. 역사 드라마를 봐도 주막 손님들은 거적이나 가마니라도 깔고 앉아 식사하고 술을 마신다 .
일제강점기에 다치노미야(立飮屋)라는 일식 주점이 경성(京城)에서 인기를 끌었다. 다치노미야는 나중에 ‘선술집’이라는 우리말로 정착된 듯하다. 의자 없이 서서 간단히 한두 잔 먹고 가는 간이술집을 말한다. 선술집이 간이술집의 대명사가 되면서 나중에는 앉아서 먹어도 선술집이라고 불렀다.
연남서서갈비는 서울과 신촌의 오래된 기억을 가진 노포(老鋪)다. 한겨울 추위에도 이 집에선 줄을 서서 고기를 굽는다. 반찬도 없다. 그냥 서서 고기를 굽고, 술잔을 비운다. 찬바람이 부는데도 문을 열어놓는다. 그래서 손님들은 외투 차림으로 자욱한 연기 속에 선 채 붉은 갈비를 굽는다. 마치 컬트무비의 한 장면 같다.“의자는 본디 있었어. 각목으로 얼기설기 엮은 의자가 몇 개 있었는데, 술꾼이 앉으니 견뎌내나. 다 부서지지. 결국 의자 없이 영업했는데, 그게 이 세월이 된 거요.”
연탄의 고열이 맛의 비결
이집의 갈비는 터프하고 양이 많다. 아직도 연탄으로 불을 때는데, 강한 화력을 내기에 연탄만 한 게 없다고 한다. 500도 가까운 고열로 굽는 것이 비결이다. 겉은 익어도 속은 촉촉하게 유지된다.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게 이대현 사장의 오랜 노하우다. 그는 지금도 제일 먼저 나와서 새벽부터 연탄불을 챙긴다. 지금도 갈비를 직접 펴는데, 가게에서 가장 숙달된 기술자다. 인물이 훤하고 나이도 들어 보이지 않지만 손을 보면 어떻게 이 가게를 이끌어왔는지 알 수 있다. 노동에 시달린 전형적인 ‘곰발바닥 손’이다. 이 손으로 그는 가게를 지켰다. 이제 가게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꽤 되겠지만 그는 여전히 가장 먼저 불을 피운다.
손님들은 대낮부터 들이닥쳐 고기를 굽는다. 서울에서 이런 풍경은 흔치 않을 것이다. 고기가 다 팔리면 한낮에도 문을 닫는다. 살짝 힌트를 주자면, 이 집에 가기 위해 별도로 간이 우비를 마련하는 이들이 있다. 가게 안에 퍼지는 자욱한 연기에서 버티기 위함이다.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109의 69, (02)716-2520
글= 박찬일 셰프 chanilpark@naver.com / 사진= 노중훈 여행작가 superwin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