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북한의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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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 29일 오전 6시15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양건은 8월 북한의 서부전선 도발 이후 진행된 남북 고위급 회담에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함께 북한 대표로 나온 사람이다. 이른 출근 시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이 하루가 지나서야 사망소식을 내보냈다는 사실에서 단순 사고가 아니라 숙청이나 권력투쟁 가능성에 대한 언급들이 나오고 있다.
권력투쟁으로 의심되는 교통사고는 1976년부터 있어왔다. 소련군 출신으로 정전협정 체결 당시 공산 측 대표로 서명한 남일 부총리는 그해 2월 관용 벤츠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순안공항 부근에서 군용 트럭과 충돌해 사망했다. 고위 탈북자들에 따르면 남일은 김일성 후계를 놓고 김정일이 아니라 이복동생인 김평일을 지지했다고 한다.대남정책을 총괄했던 김용순 비서도 69세이던 2003년 6월16일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다가 10월 사망했다. 김용순은 김대중 정부 당시 대북송금액이 공개되면서 개인적 착복 혐의가 드러나 김정일의 진노가 있었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한국 검찰이 발표한 대북송금액과 김정일이 받은 액수에 차이가 컸다는 것이다. 이 밖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강원도당 책임비서였던 이철봉은 2009년 12월25일에,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2010년 6월2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 고위층의 잦은 교통사고 사망에 대해서는 파티문화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정일은 1986년께부터 측근들에게 벤츠 승용차를 한 대씩 선물하고, 자신이 부를 때 반드시 본인이 직접 운전해 오도록 했다고 한다.
처음 벤츠를 받은 사람들을 보면 당시 군에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오극렬 총참모장,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 김영춘 작전국장, 김창성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장 등이었다. 당에선 장성택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받았다. 파티가 주로 새벽에 끝났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만취 상태에서 직접 운전할 수밖에 없고 사고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오진우는 1987년 어느날 새벽 3시께 직접 승용차를 몰고 귀가하다 사고를 내고 크게 다쳐 모스크바에서 치료를 받았다.김양건의 경우는 김정은이 직접 장의위원장을 맡은 정황으로 볼 때 단순 사고로 볼 수도 있다. 평양에서는 새벽길 사거리를 달려오는 트럭을 조심할진저.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