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때' 묻지 않은 카보 폴로니오의 고요함속으로

우루과이

'열정의 도시' 수도 몬테비데오
전남 여수시와 지구 정반대 도시
자정 넘은 시간 선술집에선 살사·탱고 춤의 열기로 '후끈'

'전기 없는 도시' 카보 폴로니오
몬테비데오 동쪽 약 250㎞…청정 해안의 도시
해변 따라 이어진 모래사구 환상적…2개뿐인 호스텔엔 '촛불잔치'
등대에 올라가 내려다본 우루과이의 카보 폴로니오 마을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의 우루과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미 여행자들조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이 작은 나라를 무심코 넘기고는 한다. 우루과이는 1930년 제1회 월드컵을 개최한 축구강국으로 유명하다. 명문 축구팀인 FC바르셀로나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의 조국이 이 나라다. 하지만 축구가 우루과이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여행객이 찾고 있는 우루과이는 독특한 매력을 간직한 지구 반대편의 흥미로운 세계다.

네온사인과 열정에 끓어오르는 도시
살사와 탱고를 추는 사람들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는 전남 여수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도시다. 매년 2월 사순절(부활절 전 40일 동안의 기간)이 시작되면 최장 40일의 카니발이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열리는 축제로 유명하다.

우루과이 독립 영웅인 호세 알티가스의 기마상이 있는 중앙광장의 서쪽은 구시가지다. 옛날 식민지 시절에 조성한 돌바닥은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거리 위로 사람과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간다. 옛 건축물과 현재의 건축물이 마주한 몬테비데오 광장 곳곳에선 간이음식점을 볼 수 있다. 즉석에서 고기를 구워 만드는 햄버거가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배고픈 여행객의 허기를 쉽게 달랠 수 있다.
몬테비데오에서 들른 선술집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해 몬테비데오에 도착한 것은 마침 금요일이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거리의 부랑자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물가가 좀 비싸지만 편안하고, 깨끗해서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숙박공유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집에 짐을 풀고 같이 온 독일, 콜롬비아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몬테비데오의 밤은 화려하다. 도시를 화려하게 치장한 네온사인이 자유로운 금요일을 즐기려는 이들을 불러모으는 것 같았다. 자정을 넘은 시각에 펍(선술집)으로 향했다. 방금 도착한 여행객의 눈에 비친 현지인들의 삶은 흥미로웠다. 살사와 탱고를 추는 현지인 틈에서 함께 춤을 췄다. 몬테비데오에서 머물기로 계획한 시간은 하루뿐. 아쉬움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춤의 열기로 가득한 몬테비데오의 밤은 뜨거웠다.자연보호를 위해 개발을 중단한 마을

살사와 탱고를 추는 사람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다음 여행지인 카보 폴로니오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우루과이의 자연보호구역 카보 폴로니오는 몬테비데오에서 동쪽으로 약 250㎞ 떨어져 있다. 버스로 3시간 정도 이동하면 닿는다. 모래언덕과 바다사자의 묘한 조화가 마음을 사로잡는 카보 폴로니오에 가려면 버스터미널에서 사륜구동 트럭을 타야 한다. 끝없이 이어진 크고 험한 모래언덕길 때문이다.처음 카보 폴로니오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태국 방콕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의 자전거 여행자 때문이었다. 남미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그는 꼭 가봐야 할 장소라며 우루과이의 카보 폴로니오를 수첩에 적어줬다. 고즈넉한 풍경뿐인 그곳에는 여행을 다니다 발길을 멈춘 히피들이 장기 체류하며 생활한다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양초로 밝히며 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말은 바람처럼 떠도는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알록달록하게 칠한 카보 폴로니오의 호스텔
카보 폴로니오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사라졌다. 초저녁의 어둠 속에서 낯선 트럭 운전사는 작은 호스텔을 하나 가리켰다. “저기 여행자 숙소가 있어요.” 어둠이 짙게 깔린 오후 6시30분에 만난 허름한 판잣집. 호스텔 창문으로 옅은 불빛이 부드럽게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낡은 나무문을 열자 밥 말리의 레게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밖은 고요하고 어두운데 이 작은 공간에는 각국의 언어와 누군가의 기타 소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레게음악이 끝없이 이어졌다. 문득 포근하게 나를 휘감아 안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들뜬 마음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우루과이 정부는 카보 폴로니오를 청정지역으로 만들었다. 1900년대에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모든 개발을 중단했다. 그래서 여행객이 갈 만한 숙소는 2개뿐이다. 태양열과 풍력발전기 등 자연 에너지를 이용하는 이곳의 마을은 전기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낮에 활발히 움직이고 밤이 되면 초를 켠다. 얼마 되지 않는 작은 식당과 여행자들을 위한 호스텔도 양초 몇 개로 어두운 밤을 밝힌다.

식사를 하고 싶었다. 물으니 마을에 두 개뿐이라는 식당 중 한 곳만 문을 열었단다.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들고 식당을 향해 걸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문을 열자 식당 주인이 반기며 인사했다. 수많은 초가 식당 안을 훤히 밝히고 있다. 낡은 벽에는 촛농이 가득 묻었다. 어디선가 오즈의 마법사가 빗자루를 타고 나타날 듯한 분위기였다. 풍족하지 않은 재료지만 주인은 우리의 음식 취향을 묻고 정성껏 요리했다. 주문한 우루과이 맥주도 잔에 따라줬다. 그날 밤은 기분이 매우 묘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
카보 폴로니오의 모래언덕
자유시간이 넘실대는 마법 같은 곳
바다사자들이 모인 카보 폴로니오의 해변
끝없이 이어진 해변을 마주한 카보 폴로니오에는 모래언덕(사구)이 있다. 때로는 바다를 품은 신비로운 작은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끊임없이 이어진 모래언덕을 올라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해변을 바라봤다. 해변에서 불어오는 초겨울의 바람이 모래언덕의 모양을 시시각각 바꾸고 있었다. 만(灣)에 자리 잡은 높은 등대에 올라가면 카보 폴로니오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등대 주변은 사랑스러운 바다사자들의 서식지다. 수많은 바다사자가 바위에서 낮잠을 자거나 쉬고 있다. 그들이 여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곳이 절로 좋아진다.

카보 폴로니오에선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없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면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나와 일광욕을 한다. 태양 아래 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누군가는 책을 읽는다. 그저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요가를 하는 이들도 있다. 해변을 걷거나 모래언덕을 오르고 마테차 한 잔을 마시기도 한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카보 폴로니오는 고요함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몬테비데오에서 들른 선술집
나 역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마을에 하나뿐인 가게에 가서 빵 몇 조각, 커피, 감자, 달걀 몇 알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는 마을에 사는 부부를 만났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남편과 페루에서 왔다는 아내는 이따금 빵을 구워 여행자들에게 판다고 했다. 여름이 다가오면 작은 선술집을 열어 여행자들에게 술을 팔고, 겨울에는 찾아오는 여행자가 비교적 적어 여유롭단다. 그들은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테킬라를 한 잔 만들어줬다. 모래를 걷어내고 판자로 지은 집에는 유리 대신 와인병을 거꾸로 세운 작은 창문도 있었다. 그들은 별다를 것 없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카보 폴로니오를 떠나던 날, 그리운 것은 숙소에서 만난 우루과이 친구 호세와 모래언덕에서 우리를 열심히 따라다녔던 검은 개 찰리였다. 왔을 때처럼 사륜구동 트럭을 타고 울퉁불퉁한 모랫길을 달려 마을 밖으로 나왔다. 돌아보니 며칠간 긴 꿈을 꾸고 온 것만 같다. 달콤한 내음 가득한 초콜릿 상자처럼 아련한 기억들. 카보 폴로니오는 마법 같은 기운을 전해줬다. 생각하면 아직 몸이 둥둥 떠 있는 듯하다. 그래, 그곳은 마법에 걸렸는지도 몰라.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고, 개는 춤을 추고, 바다사자는 두 발로 땅을 걷는 그런 마법에….

여행 팁 손전등·간단한 음식 필수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3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가면 카보 폴로니오로 가는 사륜구동 트럭을 탈 수 있다. 왕복탑승권의 유효기간이 1년으로 꽤 긴 편이고 비용은 170페소(약 6790원)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하면 우루과이 국경을 넘나드는 고속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다. 카보 폴로니오에선 전기나 인터넷을 원활히 사용할 수 없다. 개인 손전등은 필수. 식당이나 상점도 충분치 않아 간단히 먹을 식량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혹시 먹을 것이 남는다면 이곳에 터전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이나 장기 체류 중인 히피들에게 나눠주고 와도 좋겠다.

라라 여행작가(도서 《연애하듯, 여행》의 저자) mynamela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