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혜리를 키운 건, 팔 할이 '시청자'였네
입력
수정
'응답하라 1988' 혜리, '되겠어?' 하는 심정으로 간 미팅서 발탁
"'아이돌 출신 연기자' 시선, 순화시킨 것 같아 만족" [김예랑 기자]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올해 스물 셋, 걸그룹 걸스데이 출신 혜리를 배우로 성장시킨 것은 아마도 팔 할이 ‘시청자’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평균 19.6%, 최고 21.6%라는 케이블 역사상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응팔’의 이같은 성과는 전작들과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남편찾기’라는 세계관과 평범한 누군가의 추억들이 재미있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버무려져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클리셰들과 다소 미흡한 후반 전개는 질타를 피할 수 없었지만, 대중은 새로운 얼굴을 얻었다. 정환이 그랬고, 택이 그랬다. 동룡, 선우, 보라, 미옥, 정봉이 그랬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그 소녀, 덕선이 그 중심에 있었다. 덕선 역의 혜리는 대중들의 큰 우려와 함께 캐스팅이 됐다. ‘응답’ 전작들의 화려한 성적과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팔’ 1회가 방영되자 ‘혜리가 적임자’라는 신 PD의 말을 방증하듯 ‘연기력’에 대한 불신은 잦아들었다.
혜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쌍문동 여고생 덕선과 혼연일체의 모습으로 한 번쯤 그리워했던 1988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혜리는 알고 있었다.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혜리는 “모두의 걱정 어린 시선들이 나 조차도 이해가 됐다”라고 털어놨다.그는 “처음 ‘한 번 보자’고 하시기에 ‘되겠어?’ 하는 심정으로 미팅을 갔다. 이렇게 대단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드라마에 캐스팅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 기대 없이, 걱정 없이 오디션을 봤다”라고 발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혜리는 첫 눈에 신원호 PD의 눈에 들었다. “솔직하게 감독님과 대화를 나눴더니 되려 그런 부분들을 좋아해 주셨다. 보시고는 ‘덕선’과 비슷한 것 같다고 해서 캐스팅 됐다. 사실 잘 모른다. 왜 됐는지.(하하)”
혜리 스스로는 덕선 역 발탁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응팔’을 애청한 시청자들이라면 고개를 절로 끄덕일 대목이다.“시나리오 상 덕선은 울고, 웃고, 감정 표현이 많은 천방지축에 활발한 소녀다. 대책 없이 밝은 부분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덤벙거리고 바보 같은 부분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되게 똑똑한데’ 하고.(웃음) 알고보니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했을 때 그런 부분이 있다더라. 그때 감독님의 조언으로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들을 봤다. 다시 날 돌아보는데 방송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보이는 거다. 무의식중의 행동들이 덕선과 비슷하다고 느끼셨구나 했다. 캐릭터 분석을 하면서 그런 작은 모습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2010년 열일곱의 나이에 4인조 아이돌 걸스데이로 데뷔한 혜리는 막연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사실 3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보냈다. 부족한 모습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해도 되는 사람인지 말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혜리는 연기에 발을 디뎠다. SBS 드라마 ‘맛있는 인생’(2012)으로 시작해 JTBC ‘선암여고 탐정단’(2014), SBS '하이드 지킬, 나‘(2015)로 한 계단씩 밟아 나갔다. 사실 연기에 대한 애정은 보답받지 못했다. 혜리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MBC '진짜 사나이-여군특집’이다.
이제 혜리의 대표작에는 ‘진짜 사나이’가 아닌 ‘응답하라 1988’이 쓰이게 됐다. 인기와 연기력까지 동시에 인정받게 된 것. ‘아이돌 출신 연기자’, ‘발연기’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의 힘으로 털어버리게 됐다.
혜리는 “스스로에 대해 믿음이 크지는 않았다”라고 겸손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단지 이번 작품에서 ‘아, 이렇게 표현하면 이렇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구나’ 하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시청자의 반응에서 믿음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아마 연기를 계속 했을 거다(웃음)”라면서도 “시청자들의 반응에서 많이 배웠다. 공감해주시고 좋아해주셔서 스스로에 대해 조금은 자신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혜리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연기는 지금 100점 중에 5점이다. 그는 “예전에는 ‘100을 어떻게 채우지? 망했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5점 채웠어, 이제 95점 남았구나. 얼마 안남았어‘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래도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이 있고 시선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응팔‘을 통해 조금 순화시켰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인터뷰①] 혜리의 선택! 지구상에 '쌍문동 4인방'뿐이라면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변성현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아이돌 출신 연기자' 시선, 순화시킨 것 같아 만족" [김예랑 기자]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올해 스물 셋, 걸그룹 걸스데이 출신 혜리를 배우로 성장시킨 것은 아마도 팔 할이 ‘시청자’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은 평균 19.6%, 최고 21.6%라는 케이블 역사상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응팔’의 이같은 성과는 전작들과 연장선상에서 이어지는 ‘남편찾기’라는 세계관과 평범한 누군가의 추억들이 재미있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버무려져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클리셰들과 다소 미흡한 후반 전개는 질타를 피할 수 없었지만, 대중은 새로운 얼굴을 얻었다. 정환이 그랬고, 택이 그랬다. 동룡, 선우, 보라, 미옥, 정봉이 그랬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그 소녀, 덕선이 그 중심에 있었다. 덕선 역의 혜리는 대중들의 큰 우려와 함께 캐스팅이 됐다. ‘응답’ 전작들의 화려한 성적과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응팔’ 1회가 방영되자 ‘혜리가 적임자’라는 신 PD의 말을 방증하듯 ‘연기력’에 대한 불신은 잦아들었다.
혜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쌍문동 여고생 덕선과 혼연일체의 모습으로 한 번쯤 그리워했던 1988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혜리는 알고 있었다. 지난 27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혜리는 “모두의 걱정 어린 시선들이 나 조차도 이해가 됐다”라고 털어놨다.그는 “처음 ‘한 번 보자’고 하시기에 ‘되겠어?’ 하는 심정으로 미팅을 갔다. 이렇게 대단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드라마에 캐스팅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 기대 없이, 걱정 없이 오디션을 봤다”라고 발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혜리는 첫 눈에 신원호 PD의 눈에 들었다. “솔직하게 감독님과 대화를 나눴더니 되려 그런 부분들을 좋아해 주셨다. 보시고는 ‘덕선’과 비슷한 것 같다고 해서 캐스팅 됐다. 사실 잘 모른다. 왜 됐는지.(하하)”
혜리 스스로는 덕선 역 발탁에 대한 의문이 있었지만 ‘응팔’을 애청한 시청자들이라면 고개를 절로 끄덕일 대목이다.“시나리오 상 덕선은 울고, 웃고, 감정 표현이 많은 천방지축에 활발한 소녀다. 대책 없이 밝은 부분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덤벙거리고 바보 같은 부분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되게 똑똑한데’ 하고.(웃음) 알고보니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했을 때 그런 부분이 있다더라. 그때 감독님의 조언으로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들을 봤다. 다시 날 돌아보는데 방송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보이는 거다. 무의식중의 행동들이 덕선과 비슷하다고 느끼셨구나 했다. 캐릭터 분석을 하면서 그런 작은 모습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2010년 열일곱의 나이에 4인조 아이돌 걸스데이로 데뷔한 혜리는 막연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사실 3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보냈다. 부족한 모습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해도 되는 사람인지 말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혜리는 연기에 발을 디뎠다. SBS 드라마 ‘맛있는 인생’(2012)으로 시작해 JTBC ‘선암여고 탐정단’(2014), SBS '하이드 지킬, 나‘(2015)로 한 계단씩 밟아 나갔다. 사실 연기에 대한 애정은 보답받지 못했다. 혜리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MBC '진짜 사나이-여군특집’이다.
이제 혜리의 대표작에는 ‘진짜 사나이’가 아닌 ‘응답하라 1988’이 쓰이게 됐다. 인기와 연기력까지 동시에 인정받게 된 것. ‘아이돌 출신 연기자’, ‘발연기’라는 꼬리표를 스스로의 힘으로 털어버리게 됐다.
혜리는 “스스로에 대해 믿음이 크지는 않았다”라고 겸손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단지 이번 작품에서 ‘아, 이렇게 표현하면 이렇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구나’ 하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시청자의 반응에서 믿음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아마 연기를 계속 했을 거다(웃음)”라면서도 “시청자들의 반응에서 많이 배웠다. 공감해주시고 좋아해주셔서 스스로에 대해 조금은 자신이 생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혜리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연기는 지금 100점 중에 5점이다. 그는 “예전에는 ‘100을 어떻게 채우지? 망했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5점 채웠어, 이제 95점 남았구나. 얼마 안남았어‘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래도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이 있고 시선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응팔‘을 통해 조금 순화시켰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인터뷰①] 혜리의 선택! 지구상에 '쌍문동 4인방'뿐이라면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변성현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