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렙코 "저를 키워낸 건 도전 정신…첫 한국 무대 무척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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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공연하는 '오페라 디바' 네트렙코안나 네트렙코(45)는 199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극장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무대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숱한 러시아 출신 소프라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가 ‘류드밀라’ 역을 열연하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관객은 방금 오페라계의 ‘앙팡 테리블’과 마주했음을 깨달았다. 스물네 살의 가수에게 현지 언론과 평론가들은 어마어마한 찬사를 쏟아냈다.
남편인 테너 에이바조프와 함께 다양한 오페라 속 아리아 선사
세계적 ‘디바’ 네트렙코가 한국에 처음 온다. 다음달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서 그는 남편인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와 함께 다양한 오페라 속 아리아를 부른다. 네트렙코는 2011년 국내에서 내한공연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불발돼 많은 클래식 팬들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네트렙코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본래 새로운 문화 경험을 즐기는데 한국에서의 첫 무대를 생각하니 설렌다”고 말했다.그는 저돌적인 성격을 타고났다고 말했다. 10대 시절 극장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 열 시간씩 오페라 연습을 지켜본 이야기, ‘아무 역이나 시켜달라’고 부탁해 다양한 엑스트라를 맡았던 일화는 유명하다. “도전하는 걸 좋아합니다. 누구도 용감하게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요. 극 중에서 어려운 역할도 적극적으로 맡은 것 같아요. 고난도의 기교를 요하는 ‘눈의 여왕’ 속 ‘겔다’를 맡았을 때가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마치 딱딱한 견과류를 깨는 것처럼 어려웠지만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도전을 즐기는 이런 성향이 오늘날의 ‘슈퍼 디바’를 이끌었다. 네트렙코는 “이처럼 반복된 단련 과정이 타고난 목소리와 음악성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았다면 20여년의 음악 인생에서 아무런 발전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배역을 고를 때 그가 따르는 기준은 직관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요. ‘내가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죠. 더불어 작품의 예술성도 고려합니다. 전통적인 작품부터 광기 어리고 모순에 찬 신작까지, 시대 구분 없이 작품을 고릅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은 ‘일 트로바토레’ 속 ‘레오노라’다. “최근에도 레오노라를 연기한 적이 있는데, 길고 어렵지만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배역이에요.”
네트렙코는 흔히 가창과 연기가 조화를 이루는 오페라 가수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음악과 연극 사이에서 갈등했을 정도로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이 깊다. “학생 때 받았던 연기 기초 수업의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대 의상을 갖춰 입었을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시대극에서는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등을 익혔죠. 당시에는 이런 트레이닝이 사소하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제 연기의 견고한 토대가 됐다는 걸 느낍니다.”
불발된 2011년 내한 무대에서는 당시 남편이던 베이스·바리톤 어윈 슈로트와 함께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 사이 네트렙코는 슈로트와 이혼하고, 지난해 12월 테너 에이바조프와 재혼했다.“남편과는 2년 전 로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의 ‘마농 레스코’ 데뷔 무대였고, 에이바조프는 마농 레스코의 연인 ‘데 그리외’ 역을 맡았죠. 같은 무대에 서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는 게 쉽지는 아니지만 레퍼토리가 비슷해서 종종 함께 무대에 올라요. 남편과 함께할 이번 한국 무대도 무척 기대됩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