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캠프'의 기적…게임만 하던 학생들이 SW 개발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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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고 동아리 '마인드스톰'경기 포천고 2학년인 진유섭 군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게임에 빠져 있었다. 1년 동안 1000시간 넘게 특정 게임에 몰두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난해부터 달라졌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푹 빠져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 밤 10시가 돼 학교 경비원이 “나가라”고 할 때까지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개발에 열중한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연 ‘주니어 소프트웨어 아카데미’ 캠프를 다녀온 뒤 일어난 변화다. 포천고 소프트웨어 동아리 ‘마인드스톰’의 오동철 교사는 “이전까지 목표가 없었던 학생들이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W 아카데미' 참여 후
자발적으로 토론·연구하기 시작
지난 1년간 흡연 감지 앱
온도 표시 주전자 등 개발
"스스로 생각하는 법 깨달았어요"
◆스스로 문제해결 습관 생겼어요2년 전까지만 해도 마인드스톰은 이름만 그럴듯한 동아리였다. 당장 예산이 부족했다. 학생들도 소프트웨어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학생들의 흥미를 북돋우려고 고민하던 오 교사에게 삼성전자의 사회공헌 활동인 주니어 소프트웨어 아카데미가 눈에 띄었다. 삼성전자가 웹툰 형식으로 쉽게 제작한 교재와 각종 교보재 등을 무상으로 제공해주고 교육 커리큘럼도 짜주는 프로그램이다.
오 교사는 지난해 진군 등 몇몇 학생을 데리고 아카데미 캠프에 참가했다. 캠프에선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직접 나와 아이들에게 프로그램 만들기 도구인 C언어를 가르쳐줬다. 그리고 “세상에 불편한 것이 뭔지 토론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라”는 과제를 줬다.캠프에 참가한 김덕겸 군(2학년)은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주입식 교육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게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조성되자 학생들의 창의력은 금방 발휘됐다. 학생들은 ‘독서실용 팔찌’를 고안했다. 설정한 시간마다 팔찌가 팔목을 가볍게 조여주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기기다. 스스로 얼마나 공부했는지 확인하거나 잠깐 낮잠을 잘 때 유용하다.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삼성 임직원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기도 제작했다. 오 교사는 “학생들이 처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뤄낸 경험을 한 것”이라며 “그렇게 반짝 빛나는 눈빛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게임중독 학생, 프로그래머를 꿈꾸다캠프 참가를 계기로 동아리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발명의 재미를 깨달은 학생들은 시키지 않아도 일상생활의 문제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 교사는 “한 달 정도 C언어를 더 가르쳐주자 그다음에는 아이들이 알아서 했다”며 “어려운 프로그램 기술이 있으면 밤새 인터넷을 뒤져 결국 찾아내더라”고 전했다.
그렇게 지난해 내내 마인드스톰 학생들이 개발해낸 작품이 ‘흡연 감지 앱(응용프로그램)’이다. 화장실에 이산화탄소 센서를 달아 수치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면 교사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화장실 위치가 뜨는 프로그램이다. 이 앱은 지난해 삼성이 주니어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를 후원한 200개 학교에서 개발한 작품 중 최우수작으로 꼽혔다.
온도가 표시되는 주전자도 개발했다. 주전자 안 물의 온도에 따라 손잡이 색깔이 변하도록 했다. 최근 기자가 교실을 찾았을 땐 주전자가 갑자기 작동이 안 됐다. 학생들은 “바로 고칠 수 있다”며 주전자를 분해했다.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김덕겸 군은 “아버지가 해킹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며 “뚫리지 않는 보안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진유섭 군도 “이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게임만큼 재미있다”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주전자와 씨름하던 학생들이 “선생님, 고쳤어요”라고 소리쳤다. 뜨거운 물을 부으니 정말로 손잡이 색깔이 파랗게 변했다. 오 교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포천=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