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장문화의 본질을 이해 못하는 이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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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은 문화적 진화의 선물…인간의 계획 아닌 자생적 질서재산·인격 존중, 화폐, 계약, 자기책임 등은 경제적 자유를 신장하고 보호하는 제도들이다. 경제적 번영 속에서 문명화된 삶이 가능하게 된 것도 이들 제도 덕분이다. 어떻게 이런 제도들이 생겨나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달됐을까. 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공공정책에 대한 각별한 중요성 때문이다.
의회만능, 보편복지 등 장애물로 경제적 자유 훼손하는 일 없어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이 문제에 대한 지배적인 생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장제도(문화)는 정부가 미리 계획해 만든 것이라는 계획사상이다. 다른 하나는 분자생물학에서 말하는 유전적 과정을 통해 전달되는 본능의 소산이라고 믿는 ‘생물학적’ 진화사상(다위니즘)이다. 그러나 이 두 사상은 틀렸다고 주장하면서 반(反)자유사상과 일생동안 싸웠던 인물이 있다. 올해로 세상을 떠난 지 24년(3월23일)이 되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다.인간에게는 도덕, 상업, 이자, 무역과 같은 열린사회의 복잡한 시장제도를 계획해 만들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다고 하이에크는 목소리를 높였다. 인간정신은 자기 자신조차도 완전히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수많은 정신들의 거래관계를 계획해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치명적 자만이라는 것이다. 시장제도는 생물학적 진화에 의해서는 설명될 수도, 자연적 본능으로 환원될 수도 없다. 문화적인 것을 유전적 선택과 전달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의 남용이요 이론의 오해라는 게 하이에크의 인식이다.
열린사회의 시장문화는 계획해 만든 인위적인 것도, 본능에서 우러나온 자연적인 것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생겨난 자생적인 것이라는 게 하이에크의 통찰이었다. 후천적으로 모방과 학습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시장문화의 덕택으로 장사, 돈놀이, 낯선 사람들과의 협력도 가능했다. 원시사회의 동물적 상태에서 품위 있는 사회로 인간을 이끈 게 자유시장을 선사한 문화적 진화였다.
하이에크의 문화적 진화사상에 정면 도전했던 인물이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다. 시장문화에 대한 도킨스의 생물학적 분석은 애초부터 틀렸다. 시장문화의 자생적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진화에서 개인과 기업은 도태의 위험성에 대한 대비책을 세운다. 그게 ‘기업가적 혁신’이다. 자연도태에서 유기체가 속수무책인 도킨스의 다위니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시장문화와 이성(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공진화한다는 것도 다위니즘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자신의 복제를 극대화한다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는 오늘날의 출산율 감소 현상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있다. 연대감, 그룹에 대한 의존심, 나눠 먹기, 낯선 사람 기피, 경쟁·불평등 혐오 등 본능적 성향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본능과 신경구조가 형성되던 석기시대에 적응된 산물이라는 게 하이에크의 발견이었다.
그런 성향이 현대인의 유전자 속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원시사회와 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소규모 사회에서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오늘날처럼 거대한 열린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 시장제도의 진화를 다위니즘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찰스 다윈 이전에 이미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가 도덕, 법, 시장 언어에서 진화를 발견했다. 진화사상을 생물학에 적용한 인물이 다윈이라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시장문화의 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다. 시장실패를 정당화하는 주류경제학, 의회가 만든 것은 내용이 무엇이든 법이라고 믿는 법실증주의, 원시사회에 대한 향수에서 생겨난 분배정의, 보편복지 등 사회 입법이 그것이다. 모두 시장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겨난 이념들이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과 고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도 경제적 자유를 유린하는 그런 이념들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