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어디로…] 부총리는 "속도 늦다"는데…주무부처 "철강·유화·건설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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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4·13 총선이 끝난 뒤 기업 구조조정이 현안으로 떠올랐지만 정부 부처 간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구조조정이 표류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 주도로 자율구조조정 하는데
"내가 직접 챙기겠다" 유일호 돌출발언
정부 내 엇박자 심각
이태명 금융부 기자 chihiro@hankyung.com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선(先) 기업 재무평가→후(後) 채권단 주도 자율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최근 정부 내에서 “결과물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업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정부 부처는 일시적 업황 개선을 이유로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 및 산업재편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수사(修辭)만 넘쳐날 뿐 ‘행동’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혼선 부른 부총리 발언
‘기업 구조조정 성과’ 논란을 부른 건 유 부총리의 발언 때문이다. 유 부총리는 지난 15일 워싱턴DC에서 “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또 “공급과잉 업종과 취약업종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으며 빨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유 부총리의 발언이 전해진 17일부터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진의파악에 나섰다. 지난해 대·중소기업 신용평가를 거쳐 채권은행 주도로 229개 기업 구조조정을 한창 진행 중인데, 갑작스레 나온 유 부총리 발언의 저의가 뭐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기업 구조조정을 총괄하는 금융위를 대신해 기재부가 총대를 메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현재로선 유 부총리의 발언은 구조조정을 잘 해야 한다는 원론적 얘기로 파악하고 있다”며 “구조조정도 금융위 주도로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의 현대상선 관련 발언을 두고서도 혼선이 일었다. 현대상선은 현재 조건부 자율협약 상태에서 해외 선주들과 용선료(선박 대여료) 인하 협상을 벌이고 있다.이와 관련, 유 부총리는 “해운사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되지 않으면 정부가 액션(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고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현대상선 등 해운업종을 인위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논란이 일자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해명에 나섰다. 김 장관은 “현대상선이 내놓은 자구책에 따라 구조조정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도 “지금으로선 인위적 재편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말만 앞서는 정부정부 부처 간 엇박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금융위가 주도하는 범(汎)부처 차원의 ‘구조조정협의체’를 구성해 5대 취약업종(철강 조선 해운 석유화학 건설) 구조조정 방향을 짜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2차 협의체 회의에선 5대 업종별 현황을 파악하고 업계 자율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업종별 공급과잉이 상당하고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게 당시 협의체의 결론이었다.
금융위는 다음주께 3차 협의체 회의를 열어 5대 업종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각 부처에 관할업종 현황을 파악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상당수 부처가 취약업종의 업황이 나아졌다고 파악한 분석결과를 내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업종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보다 후판가격이 오르는 등 사정이 나아졌고, 석유화학업종도 유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좋아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국토교통부도 건설업계의 수주잔량이 많아 향후 1~2년 내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2차 회의 이후 5개월 새 조선·해운을 제외한 3대 업종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게 각 부처의 진단”이라며 “이 보고대로라면 구조조정협의체 회의를 열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실무부처들이 ‘근본적인 산업구조 재편’ 대신 일시적 업황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금융권 관계자는 “현 협의체는 금융위가 사령탑을 맡고 있지만, 업종별 구조조정 실권은 산업부 해수부 등 실무부처가 쥐고 있는 구조”라며 “사실상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이태명 금융부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