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20대 총선의 진정한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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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선거 불참의 굴레에서 탈출…후보-정당 따로찍은 교차투표 증가여야 정당들이 지도부 구성에 분주하다. 이 과정에서 여야 정당 인사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만으로 판단하면 여야 공히 20대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3당체제로 정치적 혼란 우려 커져…다음 선거는 젊은층이 '당락좌우'
<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치경제학 >
먼저 이번 선거가 지역주의의 후퇴를 보여준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에서 8석을 차지하고 새누리당이 전북과 전남에서 각각 1석을 차지한 것을 근거로 들지만 지역구 25석 가운데 23석을 호남에서 확보한 국민의당이라는 새로운 지역당을 탄생시킨 것도 이번 총선이다. 총 29개 선거구 가운데 23개 선거구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한 호남지역의 유권자는 명백히 공유된 지역적 이익에 따라 전략적 투표를 했다. 수도권의 호남 출신 유권자들도 비슷하게 전략적 투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줄 가능성을 우려해 더민주 후보에게 투표하고 정당투표는 국민의당에 던진 것으로 보인다.이렇게 호남과 국민의당이 일체화하면서 더민주는 원하든 않든 호남과 분리됐다. 하지만 이 점이 더민주가 전국정당화(?)하는 데 수훈갑이 됐다. 새누리당에 불만을 갖게 된 부산과 경남, 그리고 대구의 일부 유권자들이 더민주 후보에게 투표하는 데 심리적 장애물을 제거해 준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착각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이미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새누리당의 지지층은 균열의 조짐을 보였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을 때 안철수 지지자의 상당수는 새누리당의 지지층이었다는 것이 여론조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이번 총선은 집토끼도 산으로 도망갈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3당 대결의 구도가 됐을 때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하기도 했지만 국민의당은 더민주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지지를 잠식했다.
제3당의 지위를 확보한 국민의당은 “국회의장 선출 협력 가능” 운운하며 벌써부터 세를 과시하고 있지만 제3당의 지위를 뛰어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파촉(巴蜀)을 에워싼 지형의 험준함은 공명의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하는 데 적지였지만 방어에 유리한 만큼 외부로의 진출도 어려웠다. 캐스팅 보트를 쥐었다고 하나 국민의당도 확장성은 결여돼 있다.이번 총선의 진짜 의의는 한국 정치에 하나의 고비가 되는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가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첫째, 젊은이들이 선거 불참여의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이번 선거의 큰 변수 중 하나는 각종 ‘수저론’과 ‘절벽론’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좌절감이었다. 새누리당에 실망한 60대의 투표율은 낮아진 반면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올라갔다. 해묵은 경제민주화 공약이 재탕을 했는데도 먹혀든 것은 경제성장의 정체와 경제적 격차의 확대 및 고착화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투표의 힘을 자각하기 시작한 젊은이들의 선거참여는 늘어날 것이다.
둘째, 이번 선거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반란의 기억’을 갖게 됐다. 과거 지지정당을 바꿔 투표하는 유권자는 서울에서조차 10%가 되지 않았다. 지역색이 강한 지방에서는 이보다도 훨씬 낮았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서도 정당을 바꿔 투표해 본 유권자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지지정당을 바꾸는 것에 대한 심리적 봉인이 해제됐다.
셋째, 3당체제는 정치과잉을 낳고 이는 다시 정치적 냉소주의와 부동층의 증가를 부추길 것이다. 가마솥은 발을 세 개 달면 안정되지만 3당체제는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으로 늘 사건이 있을 것이다. 삼국연의가 우리에게 재미있는 것은 천하삼분에서 비롯한 온갖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진 삼국 사이의 싸움으로 당시 백성들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3당체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이 때문에 다음번 대선에서는 과거의 정치공학적 계산이 들어맞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다양한 지역과 계층으로 확장성이 크고 특히 투표율이 급증하고 있는 청년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후보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