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이란포럼 중동 진출 전략 좌담회] "물건 하나 팔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이란 진출하면 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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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차병석 한경 산업부장“이란은 한국 기업에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매장량 세계 4위이고 인구가 8000만명을 웃도는 큰 나라죠. 하지만 여전히 달러로 결제가 안 되고 인프라가 낙후돼 있습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진출을 검토해야 할 곳입니다.” 한국경제신문사가 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한경 이란포럼’의 일환으로 연 중동 진출 전략 좌담회에서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이란을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시장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의 장점을 살리는 ‘팀 코리아’를 꾸려 이란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병석 한경 산업부장(사진) 사회로 열린 좌담회엔 조 사장과 황창규 KT 회장,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이 참석했다. 한국전력과 KT, 옴니시스템 등 3개사는 이란의 전력 원격검침시스템(AMI) 구축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조환익 한전 사장, 대·중소기업 장점 살린
'팀 코리아' 꾸려 공략을…'상업적 신뢰' 계속 쌓아야
황창규 KT 회장, 신뢰 얻으려 5년간 노력
기술 수출 논의까지 진행…한국 기업 경쟁력 충분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
중소기업, 이란 진출하는데 금융결제 문제 등 '발목'
정부 역할 더 중요해져
▷사회(차병석 부장)=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만 236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그만큼 이란 시장에 거는 한국 기업의 기대가 큽니다.
▷조환익 사장=인구 8000만명의 이란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은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박 대통령 방문 기간 중 한전이 이란 측과 맺는 양해각서(MOU)만 10개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란은 오랜 기간 이어진 서방의 경제제재 때문에 외국 기업을 받아들일 인프라가 매우 취약합니다.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두드러지지 않고, 사업 자금도 직접 조달해야 합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지요.
▷박혜린 회장=이란은 굉장한 기회가 있는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진출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은 곳이에요. 한전이나 KT 같은 대기업과 함께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것이 위험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대기업이 이란 정부기관 등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넓은 범위의 계약을 맺고, 중소기업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란 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사회=한전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에너지 시장을 어떻게 봅니까.
▷조 사장=이란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들은 탈(脫) 석유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바꾸려는 것이죠. 경제를 일으키려면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가 필수입니다. 중동지역에서 전력 분야의 프로젝트 발주가 많은 이유입니다. 중동지역 국가의 고민은 낡은 인프라 때문에 송·배전 과정에서 낭비되는 전력이 많다는 점입니다. 10%가 넘는 송·배전 손실률을 보이는 중동국가들은 손실률이 3%대인 한전의 기술을 전수받고 싶어 합니다. 그만큼 한전이 진출할 여지가 많은 곳이 중동입니다.▷황창규 회장=세계적인 이산화탄소 감축 노력에 중동지역 국가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어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통해 이산화탄소 감축과 효율적인 전력망 운영을 동시에 추구하는 ‘스마트 시티’ 건설이 중동지역 국가들의 목표입니다. 스마트 시티 건설에 가장 중요한 것이 통신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통신회사들도 진출 기회가 많을 겁니다.▷사회=이란 시장에 기회가 많은 건 분명해 보입니다.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 사장=이란 사람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상업적 신뢰’를 강조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물건 하나 팔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이란 시장에 접근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대림산업이 이란 건설 시장에서 인정받는 이유도 경제제재 기간에도 꾸준히 이란에서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에요. 현지화가 필수인 시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 오면 넥타이를 풀고 깃이 없는 이란식 셔츠를 입습니다.
▷황 회장=맞는 말입니다. KT는 2011년부터 이란의 유력 통신회사에 유선망 설치와 네트워크 구축에 관한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기술 이전 등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지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신뢰를 얻으니 기술 수출을 논의할 정도로 사업 진행에 속도가 붙었습니다.▷사회=하지만 달러 결제가 안 되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다시 생겨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조 사장=이란에선 자금조달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란 정부는 외국 기업이 이란에 투자하려면 파이낸싱도 알아서 해오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한전이 이란에 돈을 가져와서 발전소 지어주고, 대금은 전기요금이나 원유로 받아가라는 식입니다. 이란 시장은 이런 위험에도 진출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회장=경제제재가 있을 때는 돈을 받는 것뿐 아니라 물건을 납품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다양한 정보수집을 하고 법률적으로 대응해도 돈을 떼이기 일쑤였어요. 이란 조폐공사와 합작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자금을 주고받는 문제 때문에 협상에 애로가 있습니다. 이란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나서서 금융 결제가 원활해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줬으면 합니다. 중소기업이 이란에 안정적으로 진출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사회=빗장이 풀린 이란 시장에는 유럽과 중국, 일본 기업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과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조 사장=이란은 전통적으로 유럽 국가들과 친해요. 이란 사람들이 아리아계 민족이라는 점도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럽 기업에 대해선 ‘기술은 주지 않고 단물만 빼먹고 간다’는 인식이 이란 사람들 사이에 강해요. 일본 기업도 단기적 시각으로 이란 시장에 접근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작년 4월에 이란 에너지 장관이 한국에 왔을 때 만나서 “우리도 당신 나라처럼 어려웠을 때가 있어서 이란이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은 물론 인력도 키워주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마음을 열고 얘기를 시작하더라고요.▷황 회장=이란 사람은 중국 기업이 아직은 한국 기업에 못 미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란 통신 시장에 중국 화웨이가 진출했는데, 초반에는 낮은 가격으로 나름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화웨이는 4G, 5G 등 첨단기술을 개발해 본 적이 없었어요. 결국 기술 이전을 바라는 이란 유력업체들은 우리와 협력하는 쪽으로 돌아섰지요. 한국 기업은 이란 시장에서 분명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정리=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