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정원의 도시 순천, 드넓은 순천만 갯벌 아련한 해넘이…선암사 입구 청아한 독경소리 귓가에 내려앉는다
입력
수정
지면E4
순천은 느리고 고요하다. 순천만의 장엄한 일몰을 보고 낙안읍성에서 지나간 세월을 복기하고 있으면 시간은 늘어진 그림자처럼 넉넉하다. 꽃들은 아름다운 고찰 선암사를 습격해서 스님들의 수행을 방해한다. 야생화 하나까지도 아름다운 순천의 초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시간이 멈춘 곳, 낙안읍성과 순천 오픈 세트장전국에 민속마을이 여럿 있지만 낙안읍성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정감이 간다. 용인민속촌이나 제주민속마을처럼 전시용 마을이긴 하지만 안동 하회마을처럼 양반마을이 아니라 그저 대다수 서민이 살아왔던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가지붕을 이은 낙안읍성은 자칫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마을의 모습들을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선 태조 6년 왜구의 침입이 극성을 부리자 토성을 쌓았던 것이 낙안읍성의 시작이었다. 이후 조선 인조 4년에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중수했다. 남부지방 특유의 주거 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장독대까지 서민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어 마치 고향마을에 온 듯한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순천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과거의 모습은 조례동 영화·드라마 세트장이다. 국내 최대 세트장은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가 됐다. 드라마 세트장에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대별로 3개 마을 200여채의 집이 지어져 있다.
벽마다 오래된 광고가 붙어 있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연이어 있는 골목길 사이로 오래된 시간들이 툭툭 쏟아져 나온다. 특히 1950년대 순천의 읍내 거리를 재현한 세트장에는 중앙극장을 비롯해 제일양조장, 소방서 등이 당시 세월을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다. 주말에는 세트장 안 주막에서 부침개와 도토리묵을 맛볼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들의 집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061)749-4003
선암사와 송광사의 절경여름의 초입에 선 선암사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선암사 입구의 승선교는 언제 보아도 우아하다. 계곡의 바위와 조화를 이루는 아치형 다리인 승선교는 역사가 300년이 넘는다. 오랜 가뭄에 물줄기가 말라붙었지만 장마철에는 승선교 아래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많은 물이 흘러내려간다. 선암사가 아름다운 절로 꼽히는 것은 절간의 모습이 빼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 사태가 난 듯 꽃을 피운 수많은 나무들 때문이다.
선암사로 들어가는 순간 독경소리가 청아하게 귓가에 내려앉는다. 선암사는 대웅전을 비롯해 40여동의 전각이 있을 정도로 웅장하지만 배치가 뛰어나고, 마치 산속에 폭 안겨 있는 듯한 모양새여서 정겹기 그지없다.선암사는 조계산 동쪽 줄기에 둥지를 튼 절이다. 조계산 서쪽에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절이 있다. 송광사다. 선암사에서 산줄기를 타고 넘어가면 대략 6.8㎞ 거리. 재게 걸으면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보조국사 이후 수많은 고승과 국사를 배출했다 해서 승보(僧寶)종찰로 불리는 송광사는 당우가 50여동에 이르는 대찰이다. 고려 명종 때에는 80여동을 갖춘 대가람이었고, 6·25전쟁으로 일부가 소실되기 전까지는 그 규모를 유지했다고 한다.
경내로 들어가려면 일주문을 지나 왼쪽에 있는 능허교(凌虛橋)라는 무지개다리 위에 놓인 우화각(羽化閣)을 통과해 산골짝에 흐르는 시냇물(溪流)을 건너야 한다. 계류와 능허교, 우화각이 삼박자를 이루는 풍광은 경치 좋은 송광사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절경이다.
자연이 연출하는 최고의 풍경 순천만
순천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순천만이다. 김승옥은 소설 ‘무진기행’에서 “무진교를 걷다 보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지는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어진다”고 표현했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suncheonbay.go.kr)은 30만㎡의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살아 숨쉬는 자연의 보고이자 람사협약의 보호습지다. 붉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과 풀벌레의 속삭임이 어우러져 조용히 걸으면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순천만의 낙조는 국내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다.
자연생태관을 거쳐 순천만 유람선에 오르면 드넓은 갯벌과 갈대군락, 다양한 철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순천만 일대에는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등 국제적 희귀 조류 11종과 한국 조류 200여종이 월동 및 서식한다. 전 세계 습지 가운데 희귀종 조류가 많은 지역으로, 자연관찰과 탐조를 위한 자연학습장과 국제적 학술 연구의 대상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체험 현장으로, 연인들에겐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로 이름이 높다. (061)749-3006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팁순천만자연생태공원에서 가까운 와온해변이나 화포마을도 꼭 들러볼 만한 명소다. 각각 일몰과 일출 풍경이 장관이다. 순천만에서 스카이큐브를 타면 순천만국가정원으로 갈 수 있다. 순천문학관에서 순천만국가정원까지 4.6㎞를 12분 만에 이동한다. 순천만으로 오가는 길목에 맛집이 많다. 그 중 별미로 꼽히는 것이 짱뚱어탕이다. 짱뚱어는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특이한 생선으로, 환경이 조금만 나빠도 서식하지 못한다. 갯벌이 살아 있어야만 잡히며 일광욕을 하고 살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대대포구에 식당이 여럿 있다. 대대선창집(061-741-3157), 갯마을가든(061-741-3121), 향미정(061-725-3885), 다인정가든(061-742-3227)이 맛있다.
시간이 멈춘 곳, 낙안읍성과 순천 오픈 세트장전국에 민속마을이 여럿 있지만 낙안읍성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정감이 간다. 용인민속촌이나 제주민속마을처럼 전시용 마을이긴 하지만 안동 하회마을처럼 양반마을이 아니라 그저 대다수 서민이 살아왔던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가지붕을 이은 낙안읍성은 자칫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마을의 모습들을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선 태조 6년 왜구의 침입이 극성을 부리자 토성을 쌓았던 것이 낙안읍성의 시작이었다. 이후 조선 인조 4년에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중수했다. 남부지방 특유의 주거 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장독대까지 서민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묻어 있어 마치 고향마을에 온 듯한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순천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과거의 모습은 조례동 영화·드라마 세트장이다. 국내 최대 세트장은 MBC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가 됐다. 드라마 세트장에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대별로 3개 마을 200여채의 집이 지어져 있다.
벽마다 오래된 광고가 붙어 있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연이어 있는 골목길 사이로 오래된 시간들이 툭툭 쏟아져 나온다. 특히 1950년대 순천의 읍내 거리를 재현한 세트장에는 중앙극장을 비롯해 제일양조장, 소방서 등이 당시 세월을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다. 주말에는 세트장 안 주막에서 부침개와 도토리묵을 맛볼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들의 집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061)749-4003
선암사와 송광사의 절경여름의 초입에 선 선암사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선암사 입구의 승선교는 언제 보아도 우아하다. 계곡의 바위와 조화를 이루는 아치형 다리인 승선교는 역사가 300년이 넘는다. 오랜 가뭄에 물줄기가 말라붙었지만 장마철에는 승선교 아래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많은 물이 흘러내려간다. 선암사가 아름다운 절로 꼽히는 것은 절간의 모습이 빼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 사태가 난 듯 꽃을 피운 수많은 나무들 때문이다.
선암사로 들어가는 순간 독경소리가 청아하게 귓가에 내려앉는다. 선암사는 대웅전을 비롯해 40여동의 전각이 있을 정도로 웅장하지만 배치가 뛰어나고, 마치 산속에 폭 안겨 있는 듯한 모양새여서 정겹기 그지없다.선암사는 조계산 동쪽 줄기에 둥지를 튼 절이다. 조계산 서쪽에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절이 있다. 송광사다. 선암사에서 산줄기를 타고 넘어가면 대략 6.8㎞ 거리. 재게 걸으면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보조국사 이후 수많은 고승과 국사를 배출했다 해서 승보(僧寶)종찰로 불리는 송광사는 당우가 50여동에 이르는 대찰이다. 고려 명종 때에는 80여동을 갖춘 대가람이었고, 6·25전쟁으로 일부가 소실되기 전까지는 그 규모를 유지했다고 한다.
경내로 들어가려면 일주문을 지나 왼쪽에 있는 능허교(凌虛橋)라는 무지개다리 위에 놓인 우화각(羽化閣)을 통과해 산골짝에 흐르는 시냇물(溪流)을 건너야 한다. 계류와 능허교, 우화각이 삼박자를 이루는 풍광은 경치 좋은 송광사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절경이다.
자연이 연출하는 최고의 풍경 순천만
순천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순천만이다. 김승옥은 소설 ‘무진기행’에서 “무진교를 걷다 보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지는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어진다”고 표현했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suncheonbay.go.kr)은 30만㎡의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살아 숨쉬는 자연의 보고이자 람사협약의 보호습지다. 붉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과 풀벌레의 속삭임이 어우러져 조용히 걸으면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순천만의 낙조는 국내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다.
자연생태관을 거쳐 순천만 유람선에 오르면 드넓은 갯벌과 갈대군락, 다양한 철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순천만 일대에는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를 비롯해 검은머리갈매기, 황새,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등 국제적 희귀 조류 11종과 한국 조류 200여종이 월동 및 서식한다. 전 세계 습지 가운데 희귀종 조류가 많은 지역으로, 자연관찰과 탐조를 위한 자연학습장과 국제적 학술 연구의 대상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체험 현장으로, 연인들에겐 낭만적인 데이트 코스로 이름이 높다. (061)749-3006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팁순천만자연생태공원에서 가까운 와온해변이나 화포마을도 꼭 들러볼 만한 명소다. 각각 일몰과 일출 풍경이 장관이다. 순천만에서 스카이큐브를 타면 순천만국가정원으로 갈 수 있다. 순천문학관에서 순천만국가정원까지 4.6㎞를 12분 만에 이동한다. 순천만으로 오가는 길목에 맛집이 많다. 그 중 별미로 꼽히는 것이 짱뚱어탕이다. 짱뚱어는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특이한 생선으로, 환경이 조금만 나빠도 서식하지 못한다. 갯벌이 살아 있어야만 잡히며 일광욕을 하고 살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대대포구에 식당이 여럿 있다. 대대선창집(061-741-3157), 갯마을가든(061-741-3121), 향미정(061-725-3885), 다인정가든(061-742-3227)이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