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적률 전쟁' 유럽 상륙…베니스 사로잡은 K-건축아트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개막…북적이는 한국관

'용적률' 주제로 서울 50년 변화 압축적으로 설명
미국·영국 등 59개국 참가…황금사자상에 스페인관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한 ‘2016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관람객들이 한국관에 설치된 건축물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신경섭스튜디오 제공
세계 최대 건축축제인 ‘2016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28일(현지시간) 개막했다. 15회를 맞은 이번 건축전의 주제는 ‘전선(前線)에서 알리다’. 각국 최일선 건축현장에서 느낀 건축가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자는 뜻이다. 칠레 출신 건축가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총감독을 맡았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홀수 해에는 미술전, 짝수 해엔 건축전을 연다.

올해 전시에는 30개 상설 국가관을 포함해 59개국이 참여했다. 2014년 국가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은 미국 뉴욕타임스 등이 ‘주목할 만한 전시’로 소개하는 등 개막 이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26일 베니스 자르디니공원에 설치한 한국관 개관식에는 국내외 건축가와 예술계 인사, 언론인 등이 몰렸다. 한국관의 주제는 ‘용적률 게임: 창의성을 촉발하는 제약’. 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 비율인 용적률이 키워드다. 총괄 예술감독을 맡은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 건축가는 땅을 볼 때 건축할 수 있는 최대 면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며 “용적률은 지난 50년간 서울의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은 부동산이나 경제 관련 학술발표장 같은 분위기다. 각종 수치 자료와 그래프, 사진과 설명이 벽면에 빼곡했다. 대형 오브제를 설치하거나 첨단 건축기술을 시연한 다른 국가관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김 교수와 신은기 인천대 도시건축학부 교수, 안기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 김승범 브이더블유랩 대표,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정다은 코어건축 팀장 등 공동큐레이터 다섯 명은 서울에 있는 130만필지와 건물 60만동의 데이터를 분석해 전시 내용을 구성했다.

전시는 보통 사람들의 주거문화와 이어진 ‘실전’ 재건축 시장을 다룬다. 큰 부지와 대규모 예산을 갖고 짓는 초고층 빌딩 대신 흔한 다세대·다가구주택, 저층 상가 등이 소재다. 기존 설계와 한정된 땅 면적, 규제 사이에서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전체주제를 다섯 개 소주제로 나눠 구성했다. 도입부에 붙은 표제는 ‘게임의 법칙’, 용적률 게임의 기본 정보를 보여준다. 게임의 선수는 셋이다. 건물 면적을 최대한 늘려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건축주, 시장을 조정하는 규제(법과 규칙), 이들 사이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내야 하는 건축가다.

‘게임의 양상’에선 치열한 고민으로 용적률을 넓히고, 건물 조형미까지 고려한 성공 사례들을 보여준다. 다가구 다세대 상가주택 등 보편적인 건축 유형과 36개 건축물을 모형과 다이어그램, 사진으로 표현했다. 이어지는 ‘게임의 배경’은 한국에서 특별히 용적률 게임이 중요해진 원인을 분석한다.

용적률 게임이 벌어지는 도시와 거리의 풍경을 시각예술 작가와 일반인의 눈으로 포착한 ‘게임을 보는 관점’도 흥미롭다. 정연두 신경섭 강성은 정진열 등 시각예술 작가들은 이른바 ‘집장사’ 건축가와 부동산업자들, 주민의 시각으로 본 건축시장 이야기를 풀어낸다.안쪽 방에 설치된 백승우 작가의 사진 연작 4327장은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주택의 확장 건축 사례를 모았다. 녹색 플라스틱 재질로 덕지덕지 이어붙인 천장 등이 중앙 홀의 깔끔한 건축물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전시장에서 만난 백 작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좁은 땅을 넓게 쓰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며 “서울 각지의 초상화”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어느 한쪽을 비판하거나 이상형을 제시하는 대신 현상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후반부 ‘게임의 의미’ 는 용적률 게임의 사회·경제·문화적 가치를 짚는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서울 자양동 풍경을 찍은 흑백 사진이다. 군데군데 붉은색이 칠해져 있다. 아파트의 확장 발코니, 다세대주택 옥탑방 등 용적률을 높이기 위해 개조된 부분이다. 게임의 세 선수가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형성한 서울의 건축현장 모습이다.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건축예술 영역으로 보지 않던 작은 건물을 조명함으로써 한국 현대건축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세계 무대에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스웨덴 사진가이자 미술비평가 헨리크 니베리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하는 세계 건축가들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제를 다뤘다”고 평가했다. 올해 건축전 최고상인 ‘황금사자 국가관’상은 스페인관이 받았다. 경제위기 이후 미완성 상태로 버려진 건축물을 부활시키는 방안을 모색했다. 두 개의 국가관에 주는 특별언급상은 페루관과 일본관이 받았고, 은사자상은 뽑지 않았다.

본전시 참여 작가 중에는 솔라노 베니테스, 글로리아 카브랄, 솔라니토 베니테스로 구성된 파라과이의 ‘가비네테 데 아르키텍투라’가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았다. 설치미술가 최재은 씨(63)가 초청작가로 참여해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59)와 함께 설치한 작품 ‘꿈의 정원’을 본전시에 출품했다. 전시는 11월27일까지 약 6개월간 이어진다.

베니스=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