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래유산] 한국도자기, 1970년대 중반 '본차이나' 국산화…글로벌 톱5 도자기 브랜드로 도약

청주공장
1943년 충북 청주의 작은 공장에서 ‘막그릇’을 만들던 한국도자기가 오늘날 세계 톱5의 도자기 브랜드로 우뚝 서게 된 것은 최고 품질의 제품만을 제작한다는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한국도자기는 김영신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 김종호 회장이 창업했다. 이후 김동수 회장에 이어 김영신 대표까지 3대째 73년간 고품격의 정통 본차이나를 제작하는 데 피와 땀을 쏟았다.

‘복’ 식기세트
한국도자기가 처음 내놓은 제품은 막사발과 대접 등으로 구성된 ‘복(福)’ 식기세트였다. 지금 보기에는 투박한 모습일 수 있지만 온정이 담긴 서민용 백자 도자기다. 1950년대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국화문’ 식기세트와 ‘녹색 유국화문’ 식기세트를 출시했다. 단순한 조각과 그림이 없는 문양 위주로 제작됐던 한식기는 1960년대 들어 장미와 백합 등 다양한 플라워 패턴 디자인을 만난다. 회사는 1968년 장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황실장미’ 세트를 내놨다. 인기리에 팔리면서 전국에 대리점을 확충하고 자동화설비도 갖췄다. 1970년대에는 한국 고유의 멋을 간직한 ‘금관장미’ 세트와 한국의 서정적인 감성과 서양의 화려한 문양의 조화가 돋보이는 ‘서정’ 세트를 출시했다.

창업 초기인 1950~60년대만 해도 매출의 약 20~30%가 이자로 나갈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였다. 하지만 ‘신용이 생명’이라는 기업 이념에 따라 약속 일자 하루 전에는 꼭 결제했다. 1972년 8월 ‘기업사채동결’ 긴급명령이 났을 때도 만기일에 맞춰 빚을 상환할 정도였다.

1973년 오일쇼크와 19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한국도자기는 단 한 명의 직원도 내보내지 않았다. 이 같은 무감원 원칙을 세운 배경은 직원들의 남다른 애사심을 높이 산 최고경영자의 결단 때문이다. 1969년 청주공장 도자기 가마에서 불이 났다. 직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올라 드럼통을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다. 김동수 회장이 뜯어말려도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도자기 원료인 백토를 갖고 와 뿌린 뒤에야 불길을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값비싼 백토가 아까워 손을 대지 않았다”는 직원의 말을 들은 김 회장은 그 이후 감원이란 단어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도자기를 생산하는 근로자
한국도자기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노사분규가 없었다. 평균 근속기간이 20년에 달하는 숙련공들의 장인정신은 그 어떤 첨단 기술보다 값진 이 회사의 자산이다. 김 회장이 2004년 장남 김영신 대표에게 경영을 맡길 때 “직원을 사랑하라”는 점을 가장 강조했다고 한다.

한국도자기는 ‘본차이나 (bone china)’라는 명칭조차 생소하던 시절 국내에서 처음으로 본차이나 도자기를 보급했다. 본차이나는 정제된 소의 뼛가루인 본애시를 함유한 식기로 가볍고 단단한 데다 투광성과 보온성도 우수하다. 한국도자기의 본차이나는 영국에서 직수입한 천연 본애시 함유 비율이 50%가량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회사는 1970년대 중반 육영수 여사의 유지에 따라 순수 국내 기술로 본차이나 도자기 개발에 성공했다. 육 여사는 김동수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청와대에서 자신있게 국빈에게 내놓을 수 있는 품질 좋은 한국산 본차이나 도자기를 생산해달라”고 부탁했다. 고생 끝에 만든 본차이나 도자기는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한국도자기는 수백년을 이어가는 기업이 되기 위해 2004년 명품브랜드 ‘프라우나’를 내놓았다. 독보적인 예술성과 수작업 제작방식, 프리미엄 마케팅 전략으로 세계 명품시장을 공략 중이다. 세계 1위의 도자기 브랜드로 도약한다는 목표에 따라 2009년 크리스털과 순금으로 장식한 최고급 라인 ‘프라우나 쥬어리’도 선보였다.

한국도자기는 20~30대 고객의 기호에 맞춰 스틸라이트의 최고급 식기를 수입, 판매하고 있다. 일일이 붓칠하고 제작한 제품이다. 한국도자기를 ‘젊은 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해 젊은 작가들과의 디자인 컬래버레이션 라인인 ‘YAP(Young Artists Project)’도 선보였다. 최근 영국 스틸라이트그룹에 프라우나 제품 등 3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김영신 대표는 “해외 판로를 넓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면서 결코 ‘메이드 인 코리아’ 정신을 잃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품질관리, 지역사회 공헌 등의 과정에서 한국 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직원과 지역사회에서 사랑받는 기업이자 진정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토종 기업으로 우뚝 서 해외에서 더욱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