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차기총리 급부상 '영국판 트럼프' 보리스…"영광스런 기회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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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혼란 영국영국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난 지난 24일. 세간의 관심은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를 주도하며 승리를 이끌어낸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52)에게 쏠렸다. EU 잔류를 지지해 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히면서 존슨은 차기 총리로 급부상했다.
'브렉시트 주도자' 보리스 존슨
미국 출생…이튼스쿨·옥스퍼드대 졸업
더타임스·텔레그래프서 기자로 뛰어…2008년·2012년 연속 런던시장 당선
더벅머리 금발에 거침없는 언변…대중교통서 음주금지 등 강한 추진력
가디언 "총리공관 입성 가능성 커져"
브렉시트 결정을 자축하는 기자회견에서 존슨 전 시장은 “우리가 지금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광스런 기회’가 영국인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라고 해석했다.○괴짜지만 추진력 강해
존슨 전 시장은 캐머런 총리의 절친한 친구이자 보수당의 정치적 동료였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으로 건너와 캐머런과 함께 명문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다녔다. 존슨은 캐머런보다 두 살이 많았고, 유머 감각과 보스 기질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명문가 출신인 캐머런은 다소 내성적인 편이었다. 존슨은 캐머런의 선배였지만 정치권에서는 항상 캐머런의 뒤에 서야 했다. 캐머런이 학업을 마치고 곧장 정계로 뛰어든 데 반해 존슨은 언론계를 먼저 접했다. 영국의 유력지인 더타임스와 텔레그래프에서 기자로 일했고 정치잡지 스펙테이터 편집장도 지냈다.
존슨은 2001년부터 하원의원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더벅머리 금발에 어수룩한 인상이지만 화려한 언변과 추진력 덕분에 정계 스타로 떠올랐다. 친근한 이미지 덕분에 존슨보다 이름인 보리스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2008년부터 8년간 런던시장으로 일하면서 미래의 총리감으로 곧잘 언급됐다. 런던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지하철과 버스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했고, 대중교통 체계 자체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런던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호평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캐머런이 버티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총선거에서 노동당을 크게 누르고 압승했을 때 존슨의 총리 지명은 더욱 멀어지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캐머런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졌기 때문이다.○한때는 “EU 잔류가 좋다” 주장
존슨은 4년 전 미국의 유명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쇼에 출연해 “나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농담으로 정치적 야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존슨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이었다. 가디언은 그 농담을 인용해 “존슨 전 시장이 미국 백악관이 아니라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으로 입성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를 내놨다. 미국 국적은 지난해 포기했다.
정치인으로서 존슨의 야심은 브렉시트를 발판 삼아 현실화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존슨이 처음부터 브렉시트를 선호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전했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와 맞서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 아래 전략적인 선택(탈퇴)을 했다고 분석했다. 캐머런의 후계자로 남아 있기에는 너무 답답했다는 것이다. 실제 존슨은 과거에 무역 자유화 차원에서 EU 잔류가 유리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적도 있다.존슨은 브렉시트 진영을 이끌기로 결정하자 캐머런 총리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 6명의 장관과 힘을 합쳐 캐머런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이민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국민투표 전까지 전체 보수당 의원(331명)의 절반 정도를 자신의 편에 서도록 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존슨은 국민투표 캠페인 동안 “잔류 진영은 영국의 힘을 평가절하하면서 공포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영국민들은 존슨이 차기 총리가 됐을 때 과연 공포를 이겨낼 만한 역량이 있을지 따져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정말 애석하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유럽 통합에 타격을 줬지만, 유럽연합(EU)은 견딜 수 있다. EU는 브렉시트 투표에 적절한 답을 찾을 만큼 강하다. EU는 장래에도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유럽이 재빨리 단순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분열만 심해질 것이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