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생명은 타이밍…원작과 호흡 함께해야 관객이 호응"

무대 In & Out - 뮤지컬 번역의 세계

위키드 등 한국식 언어유희 가미
재치 있는 대사로 작품 완성도 높여
오는 10월3일까지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러빗 부인(옥주현 분·가운데)이 자신의 파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어떻게 목사한테 이렇게 깨끗한 맛이 나지? 어디 산이야? 영국산? 호주산?”(스위니 토드) “에덴동산.”(러빗 부인)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토드 역의 조승우와 러빗 부인 역의 전미도가 이 대사를 주고받자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러빗 부인이 사람들을 파이로 만들면 어떨지 상상하며 부르는 ‘목사는 어때요?’의 한 구절이다. 19세기 중반 타락한 종교인에 대한 풍자가 가득한 곡이다. 원문은 “주교만큼 육덕진 맛은 아니어도, 부목사만큼 싱거운 맛도 아니군”이지만, 풍자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번역가가 한국식 ‘언어유희’를 가미했다.해외 뮤지컬이 대거 국내에 들어오면서 공연의 ‘맛’을 살리는 번역가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말맛’을 살린 번역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등장인물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해줘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작곡한 스위니 토드는 치밀하게 계산된 퍼즐 같은 운율과 말장난, 상징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닳고 닳은 이 냄새는 딱 봐도 짭새” 등의 가사는 운율을 잘 살리면서도 타락한 상류층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을 번역한 김수빈 씨는 “원작이 가진 풍자와 블랙 코미디를 살리면서도, 손드하임 특유의 라임과 운율을 맞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오는 2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위키드’는 원작 자체가 재치 있는 단어 선택과 각색으로 호평받고 있다. 허영덩어리 금발 마녀 글린다와 무뚝뚝한 초록 마녀 엘파바의 캐릭터를 살리는 데 번역이 큰 역할을 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에 대한 ‘탐색전’을 마친 뒤 부르는 노래 ‘이 낯선 느낌’에서는 “밥맛! 총체적으로 넌 밥맛!”이라는 귀여운 대사가 나온다. 직역하면 ‘혐오(Loathing)! 완전히 넌 혐오!’다.

날아오는 빗자루를 보고 놀란 글린다의 외마디 비명은 “오즈머니나!”인데, 원어는 “스위트오즈(SweetOz)!”다. 엘파바와 글린다가 ‘오즈의 마법사’라는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작품 번역을 맡은 작곡가 이지혜 씨는 “번역의 생명은 ‘타이밍’”이라며 “원작과 국내 관객이 똑같이 웃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번역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