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종IC~문호리 여러차례 왔다갔다…'롯데 2인자' 이인원의 생사 고뇌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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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로 밝혀진 행적생의 마지막 세 시간 동안 그는 계속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다. 차를 몰고 서울로 가는 나들목까지 갔다가 죽음 쪽으로 핸들을 돌리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 사이를 세 시간 동안 왕복하며 고뇌하던 그는 결국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26일 검찰 조사를 앞두고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사진)의 마지막 행적이다. 수사당국이 고속도로 나들목과 산책로 주변 등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적한 결과다.
밤 11시 문호리 식당에 도착
1시간30분 뒤 서울로 향하다 다시 식당쪽으로 핸들 돌려
새벽 3시반 식당앞 주차가 마지막
빈소 또 찾은 신동빈 회장 "안타깝다" 심경 밝혀
'마지막 나눈 말 뭐냐' 질문엔 "그건 좀 …" 대답 피해
29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에 따르면 25일 밤 10시쯤 집에 있던 가족에게 “운동하러 간다. 금방 다녀오겠다”며 서울 이촌동 자택을 나선 이 부회장은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로 자신의 제네시스 승용차를 몰았다. 남양주 톨게이트와 서종나들목을 거쳐 한 시간 만에 양평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밤 11시께 문호리에 있는 한 식당에 차를 댔다. 목을 매는 데 쓴 두 개의 넥타이뿐 아니라 조수석에서도 여분의 넥타이가 발견됐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이 부회장은 죽음을 결심하고 양평에 간 것으로 추측된다. 아내와 여생을 보내기로 한 곳이었다.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이 부회장은 밤 12시30분쯤 다시 서울로 가는 길인 서종나들목으로 차를 몰았다. 죽기로 결심했던 생각이 바뀐 것이었을까. 조수석에 둔 아픈 아내의 사진과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혔는지도 모른다. 그대로 서울로 향하는 나들목을 넘어섰다면 어땠을까.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모멸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그는 다시 목을 맨 나무에서 약 30m 떨어진 문호리 식당으로 차를 돌렸다. 이 부회장이 마지막으로 문호리 식당에 차를 댄 시간은 새벽 3시30분쯤. 수사당국은 이 부회장이 밤 12시30분부터 오전 3시3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서종나들목과 문호리 식당 사이를 오가며 배회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새벽, 두 곳을 수십 차례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삶과 죽음 사이, 목을 맨 나무와 가족이 있는 서울 사이를 오가며 이 부회장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이제 아무도 알 수 없다.이 부회장의 빈소에는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27일에 이어 이날 두 번째로 조문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시간30분가량 빈소에 머문 뒤 심경을 묻자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과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 뭐냐’는 질문엔 “그건 좀 …”이라며 답을 피하고 자리를 떴다.
이 부회장은 롯데백화점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면서 백화점협회장과 한국소매업협의회장 등을 지내 유통업계 CEO들이 빈소를 많이 찾았다.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사장은 “고인은 유통업계의 대부와 같은 존재로 한국 유통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며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검찰 수사가 조속하게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옛 삼성플라자 사업을 총괄한 성영목 웨스틴조선호텔 사장은 “매사에 성실해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영태 현대백화점 사장 등도 유족을 위로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은 조문하지 않았다. 발인은 3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장례기간인 30일까지는 사람을 부르는 소환조사는 없을 것”이라며 “발인이 끝나고 나면 조사를 재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유서에 ‘2015년까지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모든 결정을 내렸다’는 내용을 남긴 것과 관련해서는 “수사 내용은 증거에 의해 입증된다”며 “(유서의) 단편적 내용이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말했다.
박한신/마지혜/정인설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