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촛불

전기와 전구가 발명되기 전 어둠을 밝히는 수단은 횃불이나 촛불, 등불 등이었다. 국내에서는 주로 등불이 쓰였지만 초를 사용한 역사도 꽤 길다. 삼국시대 유물로 금동촛대나 초를 자르는 가위가 발굴된 것을 보면 그렇다. 다만 초는 구하기 어려워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고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궁중이나 상류층에서만 주로 사용했던 걸로 보인다.

초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사람들은 밀랍으로 초를 만들었고 기원전 3세기 그리스와 중국 유적에서도 촛대가 나온다. 로마에서는 주로 소기름으로 제작했다. 오늘날 초를 뜻하는 영어 candle은 ‘빛이 어른거린다’는 라틴어 ‘cande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초의 역사는 18세기 포경산업 발달로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다. 고래 기름이 원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래기름은 일단 한번에 엄청난 양을 얻을 수 있는데다 밀랍과 달리 연소할 때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또 소기름이나 밀랍으로 만든 초에 비해 단단해 더운 날씨에도 잘 변형되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역사학자들이 고래 기름으로 만든 초를 최초의 표준 양초로 정의하는 것도 그래서다.

19세기 들어서는 파라핀이 고래기름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스테아린과 함께 초의 주 원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구의 등장으로 어둠을 밝히는 수단으로써 초의 자리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대신 종교행사나 각종 의식에 사용되면서 기원이나 축하, 사랑 등의 의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속성 때문에 희생과 봉사의 상징으로도 여겨져 왔다. 대부분의 종교가 촛불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향초로써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온갖 향기를 내는 초가 다양하게 나와 있어 장식용이나 선물용으로 인기다. 공기 중 불순물을 제거해 준다고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더 늘었다.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던 식의 ‘촛불 집회’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명확지 않다. 1960년대 미국의 반전운동 과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 정도다. 촛불은 횃불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지닌다. ‘횃불을 든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횃불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외향적으로 뭔가를 도모하는 의미가 있다. 반면 촛불은 조용한 자기성찰과 기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다 같은 만큼 모두가 촛불처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보면 어떨까.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