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 하수상한 시절 더 읽고 싶은…한편의 문학 같은 '송곳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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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난해한 언어로 오염된 경제학을 차지고 칼칼한 글맛으로 구해냈다.”(최일남)
김창호 < 강북문화정보도서관장 >
“건조해지기 쉬운 논설을 문학적 미감으로 빛나게 했다.”(조정래)아침 햇발처럼 화사하고 유려한 문체에 동서고금의 현실과 텍스트를 넘나드는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지식, 명징한 통찰력과 예리한 비판정신으로 독자를 매료시킨 정운영(1944~2005)의 칼럼을 기억하는가.
그의 전공은 문학도, 언론도 아닌 경제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진보 경제학자보다는 어느 작가보다도 탁월한 필력을 자랑한 문필가로 기억된다. 그의 글을 접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동안 ‘정운영 중독증’에 걸렸을 법하다.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정운영 작고 1주기를 맞아 2006년 출간된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칼럼집이다. 운명하기 1주일 전 병상에서 부인의 도움을 얻어 구술로 완성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과 미완성 원고 ‘선비’를 비롯해 한국 사회의 핵심을 명쾌하게 꿰뚫는 명문들이 담겨 있다.“정운영 칼럼은 한국 저널리즘 100년의 축복이자 신문학 100년의 축복이다.(…) 그 글의 메시지가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퇴색한다 할지라도, 그의 문장은 한국어가 살아 있는 한 또렷이 남을 것이다.” 문화비평가 고종석의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칼럼에도 그의 탁월한 필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필력의 원천은 소설가 조정래의 표현처럼 ‘태산이 무색할 독서’였다. 그는 무려 2만권이 넘는 책을 지닌 소문난 장서가였다. 그의 글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인용문이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것은 방대한 독서량의 방증이다.
무엇보다 큰 그의 미덕은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는 점일 게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로 시작해 “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로 끝나는 그의 강의는 대학생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널리 회자됐다. 그 지성과 혜안, 그리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대안들이 한창 빛을 발할 만할 때 너무 일찍 땅에 묻혀버린 것은 개인을 떠나 한국 사회로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그는 책에 대한 각별한 애착과 결곡하고 강직한 성품에 증류수 같은 결벽증, 잇달아 찾아든 병마 탓에 평생 가난의 멍에를 벗지 못한 채 학자와 저널리스트 사이에서 전전한 비운의 지성인이었다.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장학금 덕으로 유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1982년 이후 안정적인 ‘정규직’ 보수를 받은 기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시적 신용불량자가 될 정도로 끊임없이 책을 사고 또 샀다. 그와 한 살 터울로 각별한 우정을 나눈 조정래는 “그토록 책을 사지 않았다면 집안 형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고, 더 오래 살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 책은 지난해 10주기를 맞아 그의 글을 추려 출간된 《시선》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다시는 보지 못할 ‘진정한 선비’ 정운영의 글은 두고두고 곱씹어 보고 싶다. 하수상한 시절, 연말 선물로도 제격이 아닐까. (정운영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318쪽, 1만2000원)
김창호 < 강북문화정보도서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