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혼행족이 사랑한 도시 LA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자

답답한 빌딩숲? 밤이면 로맨틱 화보로
크루즈에서 보면 더 절경이죠

포도밭 질주하며 사파리 투어 와~
훈남 카우보이 미소에 씨익~
초고층 빌딩 투명 슬라이드 타고 으악~

이것이 레알 캘리포니아
LA 북서쪽의 말리부 와인 사파리에서 와인을 즐기는 모습
태평양 건너 태양이 가득한 캘리포니아에는 다운타운, 할리우드, 디즈니랜드 등의 유명 관광지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말을 타고 아침 햇살이 눈부신 산자락을 올라 할리우드 사인이 보이는 곳까지 가면 우리가 전혀 모르는 진짜배기 캘리포니아를 발견하게 된다. 광활하게 펼쳐진 대자연과 뜨거운 태양이 키운 와인을 맛볼 수도 있다. 약 300m 높이의 고층빌딩에서 투명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보자. 짜릿한 전율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매력은 기존에 가졌던 생각을 산산이 깨뜨릴 만큼 다양하다.

유럽의 지명이 담긴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상징인 할리우드(HOLLYWOOD) 간판. Getty Images Bank
로스앤젤레스(LA) 국제공항에 착륙한 시간은 오전 6시. 입국 절차를 마치고 나오니 기분 좋은 아침 햇살이 몸을 감싼다. 공항에서 11㎞ 떨어진 곳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인 거리가 있고 그 옆으로 운치 있는 항구도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 사이로 스페인어 이정표들이 눈에 띈다. 로스앤젤레스는 스페인어로 ‘천사의 도시’라는 뜻이다. 16세기에 스페인 군대가 정착하면서 시우다드 데로스 앙헬레스(Ciudad de Los ngeles)라고 명명한 것에서 유래했다.

차로 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애벗 키니(Abbot Kinney) 대로였다. 1900년대 초 담배 사업으로 갑부가 된 애벗 키니가 이 일대에 인공 운하를 만들고 이탈리아 사공들을 데려다 곤돌라를 띄웠다. 그러나 인공으로 조성한 운하에 오염이 생겨서 그의 꿈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변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됐고 주변에 근사한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섰다. 예술적인 벽화와 전위적인 갤러리가 즐비한데 느긋하게 둘러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스카이 스페이스에서 본 로스앤젤레스 풍광. 캘리포니아관광청 제공
요트서 바라보는 로스앤젤레스의 야경
해변을 산책하는 관광객
늦은 오후에 스페인어로 ‘왕의 바다’를 뜻하는 항구 마리나 델 레이(Marina del Rey)로 향했다. 태평양을 향해 수천대의 크루즈와 요트가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정박한 여러 척의 배 중 100년 된 요트 줌브로타에 올랐다. 백발이 성성한 선장이 승선을 반기며 출항을 알린다. 앞치마를 반듯하게 두른 선원들이 반짝이는 쟁반에 와인을 담아 가져다줬다. 새우 샐러드, 각종 햄과 치즈, 미트볼과 파스타 등 간단한 요리도 있었다. 요트에서 와인에 요리를 먹고 있자니 지명처럼 그야말로 바다를 가진 왕이라도 된 기분이다. 갑판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긴 비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겼다. 어느새 항구는 멀어지고 바다는 태양을 삼킨 듯 붉게 물들었다. 해안 너머로 로스앤젤레스의 빌딩들이 하나둘 불을 밝힌 모습이 보였다. 먼바다로 나온 이방인을 위한 점등식이라도 하는 듯해서 마음이 설렜다.

승마로 장엄한 산타모니카 산맥을 탐하다로스앤젤레스에서는 다양한 스포츠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산타모니카 산자락에 있는 선셋 랜치 할리우드(sunset ranch hollywood)를 방문했다. 햇살이 눈부신 목장 풍경이 마치 서부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나이, 신장, 체중 등의 내용을 서류에 기재하고 나니, 서글서글한 인상의 가이드가 말을 데려왔다. 함께 온 일행을 찬찬히 바라보며 어울리는 말을 한 필씩 골라준다. “말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친해지세요. 그리고 본인의 말 이름을 기억하세요. 산을 오르는 동안 여러분의 이름을 말 이름으로 대신할 겁니다.” 다갈색의 털을 지닌 내 말의 이름은 애나. 작은 몸집과 커다란 눈에 초면부터 정이 갔다.
말을 타고 산타모니카 산자락을 오르는 사람들
애나를 타고 산길을 오르자 거칠고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산비탈 바깥은 낭떠러지다. 아래를 보면 저절로 긴장돼서 시선이 정면으로 돌아갔다. 눈앞으로 뻗어 있는 산맥은 점점 거대하고 장엄한 위용을 드러낸다. 봉우리처럼 솟은 리 산(Mount Lee)의 경사면에 이르자 로스앤젤레스의 상징인 할리우드(HOLLYWOOD) 간판이 등장한다. 9개의 흰 글자가 세워진 사인보드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장대한 산맥들이 등 뒤로 지나고 할리우드 거리는 발아래 있다. 말 위에 앉아서 맞는 산바람이 신선하고 개운하다.

선셋 랜치 앞에는 로스앤젤레스의 명소인 그리피스 공원(Griffith Park)이 있다. 미국 대도시 공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내부에는 그리피스 천문대, LA 동물원, 박물관, 극장 등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관광객 사이에서 인기다. 붉은 태양과 회색 구름과 뽀얀 대기가 짙은 보랏빛 하늘을 만들어 냈다. 구름 틈새로 갈라진 햇살이 여러 줄기로 나뉘어 쏟아진다. 운무 사이로 광선을 맞고 있는 빌딩들은 흡사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도시처럼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웠다.
천문대가 있는 그리피스 공원. 캘리포니아관광청 제공
광대한 사파리를 질주한 뒤 와인을
말리부 와인 사파리에서 와인을 맛보는 사람들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55㎞ 떨어진 말리부(Malibu) 지역으로 가는 동안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acific Coast Hwy)를 탔다.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정평 난 해안도로다. 왼쪽으로 태평양 위에 요트가 떠다니고, 오른쪽 언덕 위에는 그림 같은 저택들이 자리한다. 절경을 따라 달리는 50분은 앞으로 시작될 사파리 투어의 예고편이다.

목적지는 4㎢ 규모의 새들록 랜치(Saddlerock Ranch) 안에 있는 말리부 와인 사파리(Malibu Wine Safaris)다. 산타모니카 산맥에 걸쳐 있는 대규모 목장 중에서도 사파리와 포도밭이 함께 펼쳐지는 독특한 곳이다. 도착하니 통나무로 만든 사무실에서 가이드가 나왔다. 한국에 산 적이 있는 그녀는 단비라는 한국 이름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가이드를 따라 사륜구동 사파리 카에 올랐다. 뚜껑도 창문도 없는 오픈카다. 뒤로 갈수록 의자가 높아져서 어디에 앉아도 사방이 훤히 보인다. 시동을 걸고 출발한 차량이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하자 차 안에서 즐거운 비명과 환호성이 터진다. 드넓은 숲과 거대한 산맥을 향해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하자니 야성의 본능이 깨어나는 듯하다. 중간에 기린, 얼룩말, 라마, 알파카, 야크 등 동물들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기린을 바라보고, 라마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의 얼굴엔 아이 같은 미소가 번진다.

가이드가 조그만 연못 옆 나무 그루터기에 차를 세우고 와인을 꺼내 잔에 따른다. 이곳의 포도밭에선 진판델, 소비뇽 블랑, 리슬링 등을 생산한단다.

“농장과 똑같은 이름의 새들록(Saddlerock)이란 이름의 와인을 만들죠. 포도밭은 기계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경사져서 대부분 손으로 정성스레 재배합니다.” 한 가지 방법도 알려줬다. 이곳의 와인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대로 잔을 들고 차에 올라 풍경을 즐기며 마시라는 것이다. 질주하는 사파리 차에서 마시는 와인이라니. 넘실대는 잔에 햇살과 바람이 실리자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초고층 빌딩에서 공중 미끄럼틀을
70층 야외 전망대에서 유리 슬라이드를 타면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스카이 스페이스 제공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약 304m 높이의 빌딩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야외 전망대인 ‘OUE 스카이 스페이스’의 70층에 오르자 건물 외벽에 있는 투명한 유리 슬라이드가 보였다. 70층에서 69층으로 내려가는 공중 미끄럼틀이다. 14m 길이의 슬라이드를 타는 5초 정도 건물 밖으로 날아가는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안전한 미끄럼틀이라고 해도 건물 밖에 매달린 투명 통로에 몸을 맡겨야 한다니 겁이 났다. 일행 중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안내원은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촬영했을 때도 다들 벌벌 떨었다며 너스레를 떤다. 결국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했다.

앞서 내려가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심장이 빨리 뛴다. 마침내 호기롭게 출발. 순간 건물 밖으로 튕겨 나가는 듯한 전율과 함께 등줄기가 오싹하다. 5초의 순간이 너무도 짧아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 마음을 채우는 건 캘리포니아가 한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풍광이다. 어린아이 같은 도전 뒤에 화려한 대도시를 내려다보니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빌딩들의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다. 주변 사람들 역시 끝없이 펼쳐진 도시를 조용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낯선 땅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깊이 새기기라도 하는 듯.

■ 여행 정보

마리나 델 레이의 크루즈 투어는 혼블로어(hornblower.com)라는 크루즈 이벤트 회사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선셋 랜치 할리우드(sunsetranchhollywood.com) 승마와 말리부 와인 사파리(www.lasafaris.com) 투어는 프로그램과 가격이 다양하다. 나이와 신체 사항의 제한도 있으니 방문 전에 미리 확인할 것. 스카이 스페이스(skyspace-la.com) 입장료는 25달러이며, 슬라이드 이용권은 8달러다. 모든 장소는 방문 시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하늘길은 더 넓어졌다. 기존에는 두 개 항공사만 LA 직항편을 운영했으나 최근 싱가포르항공이 주7회 취항했다. 매일 오전 11시20분 인천에서 출발해 같은 날 오전 6시40분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고, 매일 오후 5시15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다음날 오후 10시30분 인천에 도착한다. 기타 여행 정보는 캘리포니아관광청(visitcalifornia.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