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화랑 '부진'…"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놓쳤다"

미디어&콘텐츠

야심작들 잇단 고전…사전제작 드라마는 '흥행필패'?

'사임당'은 3년전 기획·작년 5월 완성
드라마 풀어나가는 방식 낡게 느껴져

미스터리·로맨스 결합한 '내일 그대와'
장르 피로감…완성도 비해 시청률 저조

"글로벌화 위해 사전제작 필요하지만 질 높이는 방법도 함께 찾아야"
사전 제작 드라마는 ‘흥행필패’인가. 지난해 최고 시청률로 드라마계의 새 역사를 쓴 KBS ‘태양의 후예’ 이후 각 방송사가 야심차게 선보인 사전 제작 드라마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고 있다.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11.3%), tvN ‘안투라지’(2.3%) 등이 초라한 시청률로 막을 내린 데 이어 지난 21일 KBS ‘화랑’이 7.9%로 종영했다.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SBS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는 KBS2 ‘김과장’에 밀려 10.1%까지 시청률이 내려갔다. ‘도깨비’의 후속작으로 편성된 신민아 이제훈 주연의 tvN ‘내일 그대와’는 1.6%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방송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사전 제작 드라마의 잔혹사가 처음은 아니다. 130억원을 들인 MBC 드라마 ‘로드 넘버원’(2010년)의 평균 시청률은 6.2%였고, 대형 흥행 영화 ‘친구’를 원작으로 곽경택 감독이 직접 연출까지 맡은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2009년) 시청률도 6.7%에 그쳤다. ‘태양의 후예’가 평균 시청률 38.8%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키자 ‘사전제작의 저주’를 깼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이후 사전 제작의 장점이 부각되며 중국 시장을 겨냥한 작품이 잇달아 기획됐다.이들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 트렌드 변화가 그만큼 빨라서다. 콘텐츠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드라마 콘텐츠가 쏟아지고, 그만큼 유행도 빠르게 변한다. 한창 ‘타임 슬립’ 소재가 인기를 끌던 시기에 기획, 제작된 작품이 뒤늦게 방영되면서 시청자의 시선을 끌지 못하게 된 이유다. tvN ‘시그널’, MBC ‘더블유(W)’에 이어 SBS ‘푸른 바다의 전설’, tvN ‘도깨비’가 정점을 찍으면서 웬만한 아이디어로는 시청자의 높아진 눈높이를 따라가기 어렵게 됐다.

‘사임당’은 2014년 제작에 들어가 지난해 5월 촬영을 마쳤다. 3년 전 기획된 드라마인 셈이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소 낡게 느껴지는 이유다.

‘내일 그대와’는 작품 완성도에 비해 좀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경우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허성혜 작가가 쓴 탄탄한 대본과 ‘오 나의 귀신님’의 유제원 연출, 신민아, 이제훈의 고군분투에도 장르에 대한 피로감이 더 크게 다가온 듯하다. 첫 회부터 보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어 시청자의 중간 유입이 어렵다는 장르의 한계도 있다.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결합된 드라마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얘기다.사전 제작에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사임당’과 ‘화랑’ 모두 밋밋한 이야기 구조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급 갈등을 보여주는 듯했던 ‘화랑’은 출생의 비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여자 주인공 한 명에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여럿 등장하는 단순한 ‘다각관계 로맨스’가 됐다. ‘사임당’은 40대 여성을 겨냥한 콘텐츠에 기획 당시 유행하던 ‘타임 슬립’을 흥행을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문제라는 얘기다.

사전 제작에 대한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시도를 통해 작품 제작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배경수 KBS 책임프로듀서는 “콘텐츠 시장의 최고봉인 미국은 모두 사전제작 시스템에 돌입했다. 우리도 작품을 글로벌화하려면 사전 제작을 하는 것이 맞다”며 “그와 동시에 질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