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에 '뭉칫돈'…2월 수요예측 13조 몰려 '사상 최대'

자금 몰리는 회사채 시장

30개 기업 5조1300억 발행…역대 3번째

회사채 투자 수요 급증
미국 정책 불확실성 등 완화에 기관 풍부한 자금 유입 효과
지난해 발행 못했던 기업들 물량 내놓자 투자 대거 몰려

'반짝 증가'로 그치나
기업들, 조달한 자금 대부분 투자보단 회사채 차환에 써
하반기 발행량 줄어들 수도
회사채 발행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달 기아자동차 호텔롯데 등 30개 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위해 진행한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13조원이 넘는 ‘뭉칫돈’이 몰렸다. 이는 2012년 4월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된 이후 월별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기관투자가들이 미국 기준금리 인상 등을 앞두고 회사채 매입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예측 경쟁률도 사상 최고24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이달(발행일 기준) 30개 기업이 총 3조6100억원어치 회사채 발행을 위해 벌인 수요예측에 총 13조1480억원이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종전 최대 기록인 10조5630억원(2014년 10월)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2월 수요예측 경쟁률은 3.64 대 1로 종전 최고 기록인 지난달 3.56 대 1을 경신했다. 기관투자가들이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회사채 투자를 위해 뭉칫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발행 규모도 크게 불어났다. 수요예측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기업들이 덩달아 발행액을 늘려 2월 최종 발행 규모는 5조1300억원까지 증가했다. 이는 역대 세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또 발행액이 5조원을 넘어선 것은 2013년 9월(5조860억원) 이후 3년5개월 만이다.

◆수요 못 따라가는 공급이처럼 회사채 발행 규모와 수요예측 참여액이 폭증한 것은 발행사와 투자자의 수급 여건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회사채 시장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정책 불확실성으로 발행이 뚝 끊겼다. 상당수 기관투자가가 회사채 매입을 주저하자 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 들어 금리가 안정되고 선진국들의 정책 불확실성도 완화되면서 시장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마트를 필두로 많은 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재개했고, 기관투자가들도 지난해 집행하지 못한 자금과 올해 유입된 신규 자금을 동시에 쏟아부었다. 미 중앙은행(Fed)이 3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에 당초 하반기에 발행 계획을 세워놓았던 기업들도 이달 중 발행으로 속속 돌아섰다.

이런 가운데 수요예측이 흥행몰이를 이어가는 것은 회사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도형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크레딧리서치팀장은 “국내 채권투자액의 46%를 차지하는 국민연금과 보험사들의 자산이 연 8~10%씩 늘어나는 추세지만 지난해부터 회사채 발행량은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채 발행 규모는 2012년 32조7274억원에서 점차 증가해 2015년 37조686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24조9410억원으로 33.8% 줄었다.◆“일시적 활황” 시각도

하지만 이달처럼 회사채 발행이 많고 수요예측 경쟁률이 높은 양상이 올해 내내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회사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당장 3월에는 사업보고서 작성 등으로 회사채 발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이달에 선제적으로 발행이 이뤄진 물량을 감안하면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발행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성원 KB증권 기업금융본부장(전무)은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여전히 신규 투자를 꺼리고 있다”며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경우 올해 회사채 발행 규모는 작년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올해 회사채를 발행한 대부분의 기업은 투자보다는 기존 회사채 차환에 자금을 사용했다. 정유 화학 등 업황이 좋아 현금 보유량이 많은 기업들도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꾸준히 상환하는 추세다.

서기열/김진성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