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문(指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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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말레이시아 경찰청이 지난달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피살된 사람이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2001년 일본에 불법입국한 그를 추방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채취해놓은 지문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는 보도다.
지문이 사람마다 달라 개인 식별에 유용하다는 게 발견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일본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했던 영국인 헨리 폴즈가 선구자다. 폴즈는 바닷가 패총에 갔다가 토기조각 표면에 남겨진 미세한 선에 눈길이 꽂혔다. 흙을 만진 옛 도공의 지문이었다. 그 뒤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 끝에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 비교해보면서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연구를 끝낸 폴즈는 저명학자 찰스 다윈에게 논문을 보냈다. 당시 71세로 연로했던 다윈은 사촌동생인 우성학자 프랜시스 골턴에게 보냈지만 골턴은 이 논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친 폴즈는 논문을 ‘네이처’에 직접 보냈고, 이 논문은 1880년 10월28일자에 ‘손의 피부주름(skin furrows)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그런데 꼭 한 달 뒤에 비슷한 논문이 같은 잡지에 게재됐다. 연구자는 영국령 인도의 치안관이던 윌리험 허셜로 그는 1858년부터 인도인들에게 계약문서에 지문을 찍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누가 먼저 지문인식법을 발견했느냐를 두고 지리한 논쟁이 이어졌다. 영국 법원은 폴즈가 사망한 8년 뒤인 1938년 폴즈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문 증거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가 1892년 아르헨티나에서 보고됐다. 영국은 1901년, 미국은 1902년 지문체계를 채택했다. 국내에서는 1968년 1·21 사태 이후 남파간첩 등을 색출하겠다는 명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채취를 의무화했다.
지문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원숭이나 코알라가 지문이 있다는 이유로 영장류가 나무를 잘 타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촉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해 진화한 피부 구조라는 학설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스마트폰 본인 인증 등으로 지문을 활용한 개인식별 기술은 더 발전하고 있다. 출퇴근 확인용 지문인식기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 지문이 잘 인식되지 않는 경우는 대부분 손가락에 땀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세계적으로 지문이 전혀 없는 무지문증 사례도 심심찮게 보고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땀구멍이 거의 없는 유전인자 때문이라고 한다.
땀이 많아도 또 없어도 문제니 지문이 섬세하긴 한 모양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