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엔 지금 미국대사도 일본대사도 없다

통상·무역에 안보 문제까지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여온 미국과 중국이 다음달 초 정상회담을 한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라는 통상 이슈도 중요하지만, 우리로서는 북한의 핵무기와 사드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 초미의 관심사다. 백악관 대변인이 엊그제 “북한 문제와 사드 배치를 둘러싼 긴장완화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발표한 만큼 무엇보다 사드 담판장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한국에는 미국대사도, 일본대사도 없다. 트럼프 정부가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를 재확인했지만 한국으로 보낼 대사는 아직 지명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는 일찌감치 베이징으로 보낼 대사를 지명했고, 그보다는 늦었지만 주일 대사도 지명돼 이미 일본 정부의 아그레망(동의) 절차까지 끝났다. 공석 두 달을 훨씬 넘긴 주한 일본대사가 언제 서울로 귀환할지도 미정이다. 부산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 측 대응이 그만큼 심각한 것이다. 요 며칠 새 복귀설도 들리긴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대사가 돌아와도 한·일 관계는 당분간 겉돌 수밖에 없다.어제 본란에서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아시아 순방에 주목하면서 ‘한국만 왕따된 사우디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짚었다. 하지만 진짜 왕따는 한반도 주변 4강으로부터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중 회담만 해도 그렇다. 미국 측의 사드배치 의지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은밀한 거래에 한국은 전혀 지렛대가 없다. 무역문제가 됐건, 환율이 됐건, 북한 카드가 됐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한반도 주변 문제가 결정될 수도 있다. 이런 중차대한 판국에 대사도 내정자도 없다.

대선판에서는 안보와 외교 아젠다는 아예 실종이다. 오히려 외교·안보부처 고위직 출신들이 주축이라는 문재인 측의 ‘한반도평화포럼’은 정부에 대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안보외교까지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부역 행위’라는 극언으로 안보 관련 공무원들을 대놓고 협박하고 있다. 한국을 국제 미아로 만들 수도 있는 자학적 안보다. 동북아의 변방에서 4대 강국으로부터 동시에 왕따를 당하는 수직 추락이 이미 시작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