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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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미국 유학생 1, 2위는 단연 중국(32만8547명)과 인도(16만5919명)다. 한국(6만1007명)은 줄곧 3위였다 지난해 4위로 밀렸다. 한국을 제친 나라는 인구 2800만명의 사우디아라비아다. 지난해 6만1287명으로 5년 새 세 배로 늘었다. 인구 100만명당 유학생 수로는 중국의 열 배다.
석유대국 사우디가 막대한 국비를 들여가며 청년을 선진국으로 유학시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석유 때문이다. ‘석유 이후’의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다. 이런 의지가 지난해 ‘사우디 비전 2030’으로 집대성됐다. 여기엔 여성 사회 참여, 민간 성장, 외국인 투자 유치 등에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까지 담겨 있다. 파격적인 국가혁신 계획이다.아람코(Aramco)는 1933년 미국 소칼이 사우디 정부에서 채굴권을 넘겨받아 설립한 캘리포니아-아라비안스탠더드오일이 전신이다. 소칼이 텍사코에 지분 50%를 넘겨 1944년 ‘Arabian-American Oil Co.’로 개명했다. 아람코는 그 약칭이다. 1973년 중동전쟁 이후 자원민족주의가 대두되며 1980년 국유화됐다.
아람코의 덩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산이 30조달러(약 3경3400조원)로 한국 정부 예산의 83.5년치다. 세계 최대 가와르 유전 등 100여개 유전·가스전을 갖고 있다. 가채 매장량이 2600억배럴이고 하루 1200만배럴을 생산한다. 배럴당 8달러로 잡아 아람코의 총 지분가치는 2조달러다. 비공개 기업이지만 2010년 매출은 1820억달러(약 202조원)로 추정된다. 사우디 왕실과 재정의 돈줄이다.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공개키로 한 것은 저유가로 인한 재정 구멍 탓이다. 올들어 사우디가 원유 감산을 강력히 주도하는 것도 아람코 상장과 밀접하다. 아킬레스건(腱)도 있다. 아람코는 매출의 20%를 로열티로, 순익의 85%를 세금으로 낸다. 배당 재원이 없다는 비판에 사우디는 세율을 50%로 낮추기로 했다.거대 아람코의 기업공개로 국제 금융계가 들썩이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지분 5%만 파는데도 그 규모가 100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 뉴욕증시 상장으로 대박을 친 중국 알리바바의 네 배이고, 시가총액은 애플의 열 배가 될 전망이다. 상장 수수료만도 10억달러가 넘는다. 반면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 사우디 국왕의 미·중·일 순방은 탈(脫)석유가 목표이고 아람코 상장은 그 상징이다. 사우디는 석유에 ‘몰빵’하다 몰락한 베네수엘라와는 다르다.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중국은 발 빠르게 대응하는데 한국만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가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