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동연 후보자와 첫 인연 맺은 장하성 실장의 2015년 '아주대 강연' 들어보니…

"한국의 불평등 심화, 보수·진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보수는 '박정희때 이랬다'며 과거로 미래를 설계하고
진보는 '유럽은…' 이상에 매달려"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 아닌 정규직이 사는 것"
비정규직 실태 꼬집기도
2015년 어느 날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사진)는 김동연 아주대 총장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 총장은 “장 교수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며 아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 교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김 총장의 요청을 수락했다. 이 같은 첫 만남이 있은 지 2년 만에 장 교수와 김 총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총리 후보자로 다시 만났다.

장 실장은 지난 21일 정책실장에 임명된 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인 ‘제이(J)노믹스’를 함께 이끌어 갈 김 후보자와의 인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김 후보자가 총장에 취임한 지 두 달 만인 4월2일 ‘한국 자본주의, 3무(無) 시대의 3포 세대는 희망이 있는가’란 주제로 아주대에서 1시간20분 동안 강연했다.장 실장은 강연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장률이 항상 높았다”며 “하지만 성장하면서도 임금과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불평등 자본주의가 고착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가계에서 임금소득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임금이 늘어나지 않으면 잘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J노믹스에서 약속한 ‘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 등의 정책과 맞닿아 있는 얘기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비판했다. 장 실장은 “기업은행은 은행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이 32%로 가장 높고, 여성 직원의 비정규직 비율은 51%에 달한다”며 “사업보고서를 보고 직접 추정해 보니 정규직 평균 임금은 연 960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고에서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이 산다’고 하는데 결국 정규직 직원이 사는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1~3차 업체 간 근로자 임금 격차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장 실장은 “현대차의 연평균 임금은 9400만원인데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2, 3차 협력업체 근로자는 2000만원대를 받는다”며 “(이 같은 임금 격차는) 경영학과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힘의 논리’에 의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장 실장은 “한국은 서비스산업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대한통운을 인수한 CJ를 예로 들었다. 그는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할 때 인수전에 함께 뛰어든 삼성SDS는 인수에 실패한 뒤 결국 대한통운과의 거래를 끊었다”며 “재벌들이 내부거래를 하는 이상 서비스업에서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 기업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된 데는 보수와 진보 모두에 책임이 있다는 게 장 실장의 생각이다. 그는 “보수는 ‘박정희 때는 이랬다’며 과거로 미래를 설계하고, 진보는 입만 열면 ‘유럽이 어떻다’며 이상에만 매달린다”고 지적했다. 장 실장은 “임금 평등, 고용 평등, 보육 평등은 어떤 국가적 과제보다 시급하다”며 “가장 중요한 건 정책으로 실현할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