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뮤지컬로 거듭난 타이타닉…본고장 브로드웨이 재도전할 것"

'공연계의 돈키호테'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감독 꿈꾸던 '영화광'
고3때 영화 '자전거 도둑'에 반해 영화감독 꿈꾸다 공연기획사 입사
음악으로 교감하는 뮤지컬에 빠져 공연제작자로 '인생 항로' 변경

'신춘수식 K뮤지컬' 탄생
지킬 앤 하이드·맨 오브 라만차 등 원작에서 대본·음악은 살리되
무대·연출은 한국식으로 재창작…"돈키호테처럼 모험적 시도 즐겨"

목표는 K뮤지컬 해외진출
‘지킬 앤…’ 내년 중국서 공연, 싱가포르·홍콩·일본 등 월드투어
브로드웨이 진출 작품 잇단 고배…‘타이타닉’으로 내년 시즌 다시 도전
“레 미제라블 같은 걸작 만들 것"
“현실은 진실의 적이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국내 정상급 뮤지컬 제작사인 오디(OD)컴퍼니가 만든 작품 ‘맨 오브 라만차’에서 주인공 돈키호테가 외치는 말이다. 현실의 척박함을 견디며 꿈(진실)을 좇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일컫는다. 타협하지 않고 꿈을 지켜낸 자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극중 돈키호테는 꿈을 이루는 것보다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돈키호테는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49)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극중 돈키호테의 입을 빌려 했다. 그 자신도 오디컴퍼니를 설립한 2001년부터 작품 제작과 비즈니스에서 항상 모험을 했다. 공연계에서 ‘뮤지컬 분야의 돈키호테’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2000년대 중반 하나의 세트를 변형시켜 장면을 전환하는 연출 방식을 사실상 처음 국내에 도입했다. 한국 뮤지컬 대부분이 창작이거나 ‘라이선스 레플리카’(해외 원작을 국내에서 그대로 공연)였을 때 그는 ‘라이선스 논레플리카’(원작에서는 대본과 음악 정도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재창작)를 시도해 잇달아 흥행시켰다. 내년에는 한국 뮤지컬계에서 전례가 없는 해외 공연에 나설 예정이다. 과거 두 차례 했지만 흥행하지 못한 브로드웨이 공연에도 재도전한다.◆영화광에서 뮤지컬 제작자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신 대표의 관심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처음에는 관심의 대상이 뮤지컬보다는 영화 쪽이었다. 영화관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때 그는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신 대표는 “고3 때 이탈리아 명화 ‘자전거 도둑’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며 “아버지와 아들 간 끈끈한 사랑을 표현한 영화에 너무나 감명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 휴학 중 찾아온 ‘운명적 만남’이 그의 진로를 뮤지컬로 틀게 했다. 신 대표는 1995년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가 운영하던 공연기획사 TNS에 입사했다. 설 대표는 한국 뮤지컬 시장을 성장시킨 일등 공신으로 널리 인정받는 인물이다. 신 대표의 꿈은 여전히 영화감독이었지만 같은 종합예술인 뮤지컬에도 관심이 있었던 터였다. 당시 이 회사가 창작 뮤지컬을 잇달아 내놓으며 창의성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한 수 배우자’는 생각으로 입사했다.신 대표는 TNS에서 일하며 설 대표의 지도로 뮤지컬의 매력에 눈을 떴다. 그는 “음악을 통한 정서적 교감과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장면 간의 조화는 다른 장르 예술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뮤지컬만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지금도 설 대표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신 대표는 “항상 꿈꾸고 실행에 옮기는 분이기에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TNS에서 일한 기간은 4년이 채 안 되지만 당시 배운 걸 바탕으로 공연 연출가이자 기획자로 빨리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주인공 돈키호테의 나무조형물을 들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래를 보고 작품 만들어”

돈키호테가 현실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듯 신 대표 역시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작품을 만든다. 2004년 첫 공연을 한 라이선스 논레플리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대표적이다. 다른 뮤지컬이 세트를 무대에 늘어놓고 치우기를 반복하며 무대 변환을 할 때 그는 이런 부산스러운 과정을 없애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 결과 스스로 움직여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는 세트를 제작했다. 배우나 제작진도 유명인보다는 재능 있고 진취적인 사람을 주로 기용했다.신 대표는 “같은 규모의 다른 뮤지컬과 비교해 무대장치에만 돈을 2~3배 많이 썼다”며 “당시 뮤지컬시장은 규모가 작아 이런 공연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회고했다. 그는 “공연시장 규모는 소득 수준과 비례하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 뮤지컬 시장도 커질 것이란 확신은 있었다”고 덧붙였다.

신 대표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이후 10여 년 동안 뮤지컬 시장은 크게 성장했다. 오디컴퍼니는 라이선스 논레플리카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 형식의 작품은 국내 창작 뮤지컬에 비해 해외 유명 작품 명성의 덕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한국 관객 정서에 맞게 드라마를 각색하고 갖가지 양념 같은 ‘변주’도 시도했다. 2015년까지 지킬 앤 하이드를 매년 공연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 당장 관객을 끌어모아 투자비를 회수하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든 적은 없다”며 “미래 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생각으로 만들기 때문에 공연을 내놓을 때 가장 신경쓰는 건 손익구조가 아니라 작품 완성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면 당장은 작품이 흥행하지 못해도 훗날 좋은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소신이 있다”며 “다음달 8일 개막하는 대사 없는 뮤지컬 ‘댄스시어터 컨택트’도 이런 뜻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일 욕심’도 엄청났다. 오디컴퍼니는 다른 회사에 비해 평균적으로 2~3배 많은 작품을 매년 무대에 올리며 경험을 쌓았다. 작년 겨울부터 현재까지만 다섯 개 작품을 선보였다. 오디컴퍼니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머더포투’ 등으로 소극장 공연도 했다.

◆내년 해외투어, 브로드웨이 공연하기로

국내에서 이미 최고로 인정받지만 그의 눈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신 대표는 “뮤지컬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부터 국내 시장에 안주할 생각은 없었다”며 “내가 만든 뮤지컬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나도 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신 대표는 해외 시장의 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다. 그는 “내년에 중국에서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하기로 현지 업체와 계약했다”며 “중국을 거쳐 싱가포르 마카오 홍콩 일본 등에서 공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뮤지컬 제작사가 해외투어 공연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디컴퍼니는 지난해에도 이 작품으로 해외투어를 추진했지만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행이 막히면서 무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신 대표의 끈질긴 노력으로 다시 살아났다.

브로드웨이 공연에도 재도전한다. 오는 11월 국내에서 막을 올리는 작품 ‘타이타닉’이 그 주인공. 2018~2019년 시즌 브로드웨이 무대를 겨냥하고 있다. 오디컴퍼니는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Holler if ya hear me·내 목소리 들리면 소리쳐)’와 2015년 ‘닥터 지바고’로 두 차례 브로드웨이 공연을 한 적이 있으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신 대표는 “이번 공연은 자신 있다”며 “과거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의 꿈은 밤하늘에 뜬 북극성만큼이나 명확하다. ‘레 미제라블’(1985년 런던에서 초연된 해외 원작), ‘맨 오브 라만차’(1965년 뉴욕에서 초연된 해외 원작) 같은 전설이 된 뮤지컬을 자신도 만드는 것이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각오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만든 작품이 모두 ‘대박’을 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전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실패를 이겨냈습니다. 실패에 개의치 않습니다.”나아가 기회가 되면 한국 뮤지컬시장 상황을 개선하는 데도 힘을 보태려고 한다. 신 대표는 “재능 있는 배우와 창의적인 제작진이 많아져야 아름다운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는데 한국은 아직 환경이 척박하다”며 “신인배우와 창의적인 스태프를 더 발굴해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저변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