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해외 27곳 '거미줄 네트워크'…"신흥국선 노무라보다 유명"
입력
수정
지면A10
미래에셋 20년 탐구 (3)·끝 - 해외서 길 찾는 미래에셋“펀드 가입 1년 만에 원금의 40%를 잃었다. 내 돈 물어내라.”
2003년 해외법인 설립
해외 투자자 자산만 15조원…"굵직한 딜 제의 먼저 들어와"
M&A 통한 사업확장…2011년 캐나다 운용사 인수
기업가치 두 배 이상 높아져…아시아 대표 IB 도약 '야망'
2000년 12월30일 서울 여의도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 지하 2층 대강당. 폐쇄형 펀드인 ‘박현주 펀드 2호’ 청산을 결의하기 위해 마련된 주주총회는 투자자 300여 명의 항의로 아수라장이 됐다. 연단에 선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당시 미래에셋투자자문 대표)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란 말을 반복했다.박 회장은 이날을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한다. 그는 “투자 대상을 국내 상장 주식으로 한정한 탓에 시장 상황이 나빠지자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며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내려면 해외로, 여러 투자 자산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날”이라고 했다.
◆2년간 50% 수익 낸 첫 해외펀드
박 회장은 절치부심했다. 해외시장을 공부했고, 채권 부동산 등 주식 외에 다른 투자 자산을 파고들었다. 2005년 2월 선보인 ‘미래에셋아시아퍼시픽스타’는 박 회장이 4년 넘게 공부한 결과물이었다.‘국내 운용사가 내놓은 첫 해외펀드’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펀드는 순항했다. 첫 2년 누적수익률이 50%에 달했다. 자신감이 붙은 박 회장의 머릿속은 ‘글로벌’로 가득찼다.
‘국내 투자자의 자금을 해외 유망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하면 수익성과 안정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2006년 ‘인사이트펀드’란 이름으로 출시됐다. 잘나가던 인사이트펀드가 고꾸라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부터였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인사이트펀드 수익률이 ‘박살’났다. 박 회장은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실패는 박 회장과 미래에셋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미래에셋은 해외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채권 등으로 투자 자산을 넓히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자도 미래에셋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전체 운용자산(117조238억원) 중 13%(15조3145억원)는 해외 투자자가 맡긴 돈이다. 운용자산의 37%(43조2988억원)는 해외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금융상품을 해외 투자자에게 판매한다는 점에서 미래에셋은 수출기업”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아시아 대표 IB로 성장
미래에셋금융그룹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호주 룩셈부르크 등 세계 15개국에 27개 법인과 사무소를 둔 글로벌 투자회사다. 2003년 설립한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시작으로 매년 ‘해외 영토’를 넓혔다. 1조6434억원을 굴리는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은 현재 인도의 유일한 독립 외국 자본운용사로 활약하고 있다.현지 금융회사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2011년 1400억원에 인수한 캐나다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호라이즌 ETFs’가 대표적이다. 대다수 임원은 “적자 회사를 왜 인수하냐”며 반대했지만, 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앞으로 ETF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M&A를 통해 역량을 빨리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회사의 ETF 순자산은 인수 당시 3조6919억원에서 지난달 말 6조1158억원으로 65.5% 늘었고, 기업 가치는 두 배 이상 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미래에셋은 해외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대표는 “브라질 중국 등 신흥국에서는 미래에셋의 명성이 아시아 최대 투자은행(IB)인 일본 노무라금융투자보다 높다”며 “미래에셋은 글로벌 기관투자가가 굵직한 투자 건을 들고 한국에 올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 12년 동안 쌓은 해외 투자 경험을 토대로 주식 채권 부동산을 넘어 해외 기업 투자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주요 투자 대상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이 될 전망이다.박 회장은 “향후 금융 경쟁력이 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과 얼마나 잘 융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미래에셋의 경쟁자는 국내 증권사가 아니라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라며 “글로벌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금융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김우섭/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