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환자 생활비까지 지원한 '빈자의 어머니' "91세 현역…남은 인생도 인술 펼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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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외재단 성천상 수상' 한원주 매그너스병원 내과 과장
감독기관도 막지 못한 노의사의 열정
공기 좋은 산속에서 일한다지만 하루 종일 환자들과 생활하려면 힘에 부칠 만도 하다. “진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병원에 상주하다 보니 근무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때도 있죠. 힘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전혀 고단하지 않아요. 몇 년 전만 해도 해외에 의료봉사하러 밤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도착하면 다른 사람들은 늘어져 있는데 저는 그날 바로 일을 했어요. 봉사라는 게 힘이 들 것 같지만 힘이 나는 일이에요.”2008년 의료선교의원에서 82세의 나이로 은퇴한 그는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대신 이곳으로 왔다. “82세에 은퇴했으니 많이 늦었죠. 의료선교의원에서는 월급 100만원 받았는데 먹고살 만은 했습니다. 집도 있겠다 일하지 않아도 되지만 ‘뒷방 늙은이’는 되기 싫더군요. 배운 게 아깝기도 하고 봉사를 계속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이 늙은이를 오라는 데가 있어서 왔죠.”
손의섭 매그너스의료재단 이사장은 열정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그의 모습에 감동해 ‘종신계약’을 제안했다. 손 이사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고령 의사가 제대로 환자를 볼 수 있겠느냐고 조사를 나온 적이 있다”며 “그런데 한 과장님이 컴퓨터로 전자의무기록을 능숙하게 다루고 유창하게 영어로 강의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르고 갔다”고 했다.
‘과장’이란 직함은 그가 고집한 것이다. “명예원장 같은 직함을 주겠다는데 싫다고 했어요. 더 늙고 병에 걸려서 일을 못할 때까지 과장으로 평생 일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아프면 이 병원에서 임종 때까지 입원시켜주겠다고 하더군요. 월급도 보지 않고 왔는데 9년 내내 월 300만원을 받으니 주변에서는 ‘노예계약’이라고 합디다. 의사 중에 이만큼 받는 사람 아무도 없다면서요. 그래도 예전에 100만원 받던 때보단 많다고 생각합니다. 10곳 정도를 후원하고 있는데 십일조도 내고 자비로 해외봉사갈 때 말고는 돈 쓸 일도 없습니다.”‘금수저’ 인생 대신 택한 봉사의 길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게 됩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 환자 보고 애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바쁘게 살았어요. 진지하게 내 삶에 대해 생각할 여력이 없었죠. 남편이 죽고 나자 모든 게 의미가 없어지더군요. 죽으면 칫솔 하나 못 가지고 가잖아요. 돈을 많이 벌어 수억원을 자식에게 남겨준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습니다.”
개인병원을 접고 봉사의 길을 택했다.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에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곳에서 영세민, 노숙자를 가리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무료로 진찰했다.
“남편을 보니 하고 싶은 일을 못다 하고 죽은 게 큰 한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의료봉사를 하면 적어도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을 할 때는 환자가 치료비를 낼 수 있을지 걱정될 때가 있었는데 돈을 안 받고 진료하니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돼서 속이 편하더군요. 손해보는 게 아니라 기쁨을 얻게 됐습니다.”
마음까지 고쳐주는 의사
“야맹증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눈이 어두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가 가족들에게 온갖 구박을 받고 힘들게 살던 사람이었죠. 봉사자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길거리에서 칼, 가위를 파는 좌판을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제법 장사가 잘됐어요. 해보려는 의지가 생기니까 가족들도 사업을 키워보라며 리어카를 사줬죠. 그러다 보니 가족관계도 회복되고 나중엔 조그만 가게도 얻었습니다. 몇 년 후 연락이 닿았는데 장가도 가고 잘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돈도 많이 벌어 눈수술도 한다면서요. 보람되고 기뻤습니다. 조금만 도와줘도 이 분들에겐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되니 더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소외계층을 곁에서 지켜봐온 경험은 재활병원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환자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의사로 통한다. “노인도 젊은 세대, 자식들에게 소외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쉽게 섭섭해하고 노여워해서 웬만큼 노력해선 안 됩니다. 자칫하면 원수처럼 달려들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대하는 게 중요하죠. 어떤 환자는 30분 이상 저를 붙잡고 불만을 제기하는데 그럴 땐 찬송가를 부르라고 하고 다른 환자를 보러 갑니다. 제가 터득한 기술이에요. 노래를 부르다 보면 화가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화가 난 이유도 잊게 되거든요.”
이렇게 시작한 의료봉사가 39년째다. 그는 힘들 때마다 의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린다고 했다. “아버지는 8·15 광복 이후 콜레라가 유행할 때 병원 문을 닫고 환자를 보러 다니셨습니다. 진주에서 한일의원을 운영하면서 형무소 수감자들과 한센병 환자도 돌보셨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벌이가 좋다는 이유로 의사, 변호사를 선호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어려서부터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치매 환자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남은 삶 노인 환자 곁에서 돌볼 것”
성천상 시상식은 오는 1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다. 상금은 1억원이다. 그는 “상금 얘기는 처음 들었다”며 “안 그래도 요새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데 반가운 소리”라며 반겼다.
“주택 자금 대출 이자를 갚느라 후원금을 제때 못 내고 있었는데 다행입니다. 여유가 생기면 보충해서 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금으로 돕고 싶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겠네요. 딸이 암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는데 맛있는 것도 사주고 손녀 대학 등록금도 지원해주고 싶습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인터뷰가 퇴근 시간이 다 돼서야 끝났다. 그는 “인터뷰하느라 환자를 못 봤으니 지금부터 일해야겠다”며 다시 청진기를 들었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빼고는 만족스럽고 기쁜 일생이었습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남은 생도 저와 같은 노인 환자들 곁에서 의사로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 에세이 발간한 한원주 의사
"백세 현역이 어찌 꿈이랴"…90대 여의사의 일과 삶 녹여내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