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복지·규제의 대상 전락한 대학…대통령 발언에 전형료 일괄 인하

'공공의 적' 분위기 팽배
교육투자 강조 미국과 딴판
요즘 대학 총장들 사이에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유행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그간 묻혀 있던 각계의 소망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대학들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움츠리고 있어야 하는 신세를 빗대 하는 말이다. 한 서울 사립대 총장은 “사립대를 학생 등록금이나 편취하는 공공의 적으로 모는 듯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21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8학년도 대학 입학전형료 인하 계획’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국 202개 4년제 대학 중 97.5%(197개)가 입학전형료를 평균 15.24% 낮추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국·공립대에 지원하는 수험생은 4300~1만7700원, 사립대 응시생은 5000~9600원 절감될 것이라는 게 교육부 추정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13일 “대학들이 1000억원 이상의 전형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발언을 한 지 한 달여 만에 이뤄진 결과다. 올 9월 수시 모집부터 적용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이번 조치로 수험생을 둔 학부모는 수시 6회, 정시 3회 등 가능한 지원을 모두 할 때 최대 10만원가량 부담을 덜 수 있다.

대통령 발언에서 시작해 대학의 일괄 동참으로 귀결된 이번 과정은 새 정부의 기형적인 대학관(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서울의 대형 사립대 총장은 “대학을 창의와 자율이 아니라 복지와 규제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했다. 교육부는 전형료 인하안이 대학의 자발적 동참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하율을 두 자릿수로 해야 교육부가 받아줄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강압적이었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한 원로 교수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2013년 3월 국정연설이 떠오른다고 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대학을 포함한 학교 1000곳에 3차원(3D) 프린터 등 첨단 디지털 제작 도구를 완비하도록 지원하는 투자안을 발표했다. 미래 산업 선점을 위해선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전향적인 조치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4차 산업혁명이란 화두 아래 대학의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는 데 혈안이다. 전형료 외에 신입생 입학금까지 내려야 하고, 8년째 동결 중인 등록금도 인하안이 논의되는 등 대학 규제책만 줄줄이 거론되는 국내 현실에선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박동휘 지식사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