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슬픔을 모르는 타히티인…감정은 학습된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 최호영 옮김 / 생각연구소 / 704쪽 / 2만2000원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 우리는 바늘이 팔에 닿기 전에 이미 고통을 느낀다. 이전에 주사를 맞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뇌는 살갗을 뚫고 들어올 바늘을 예측해 고통을 ‘구성’한다. 주사 맞을 때 경험하는 고통이 실제 있는 곳은 우리의 뇌다.

리사 펠드먼 배럿 미국 노스이스턴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감정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검증하는 뇌의 작동 원리”라고 말한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감정은 사람과 문화, 맥락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배럿 교수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감정은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에게는 보편적 감정이 있고, 감정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신체 반응을 일으킨다고 여겨 온 심리학계의 고전적 견해를 정면 반박한다.

저자는 ‘구성된 감정 이론’을 제시하면서 감정이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특정 감정의 개념을 알고 있을 때 비로소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타히티인에겐 ‘슬픔’이라는 개념이 없다. 대신 아픔과 곤란, 피곤, 시큰둥함을 통칭하고 ‘독감에 걸렸을 때 느끼는 피로’로 번역되는 ‘페아페아’라는 단어만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감정은 학습을 통해 구성된다. 갓난아이가 어떤 이유에서 불쾌함을 느끼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음식물을 뱉은 때를 생각해보자. 부모는 “화났니? 화내지 마”라고 반응한다. 이런 반응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의 행동과 부모의 말을 결부시키며 ‘분노’라는 개념을 학습하고 그 감정을 구성한다. 우울과 만성 스트레스 등도 감정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다. 뇌가 갖고 있는 예측 기능이 이와 관련이 깊다. 뇌는 산소와 포도당 등 신체 예산의 관리자다. 상사나 선생 등 우리에게 부담을 줄 만한 사람이 걸어오면 뇌는 우리 신체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예측하고 예산을 인출한다.문제는 뇌가 신체에서 요구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거듭 잘못 예측할 때다. 일반적으로는 적절한 식사와 수면, 사회적 지지 등으로 이런 적자 상황이 해소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만성 적자로 치닫는다. 그러면 신체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세계에 대한 관심을 끊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우울증의 시작이다.

감정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생각은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새로운 감정의 개념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기분이 좋다’와 ‘기분이 더럽다’는 두 개의 개념만 가진 사람과 기분이 아주 좋다는 의미를 ‘만족스러운’ ‘행복한’ ‘설레는’ ‘감동적인’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사람은 감정을 쉽게 구분해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