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부작 드라마를 6분에… '서머리 콘텐츠'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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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돈 부족한 젊은층, 유튜브 등 요약 콘텐츠 즐겨직장인 정숙현 씨(25)는 출퇴근 때마다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한 팟캐스트(인터넷방송) 앱(응용프로그램)을 켠다. 목록에는 마치 서점처럼 책 제목이 쭉 나열돼 있다. 평소 읽고 싶던 소설을 골라 클릭하면 줄거리를 40분 안팎으로 요약해 들려준다. 정씨는 “시간과 돈이 부족했던 취업 준비생 때부터 즐겨 들었다”며 “책을 읽지 않고도 내용을 익힐 수 있다. 금전적·시간적으로 ‘가성비’가 좋다”고 말했다.
영화·책 요약 방송 1000여개
'김영하 책읽는 시간' 6만명 구독
"수박 겉핥기로 그칠 우려도"
도서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요약해서 즐기는 ‘서머리(summary) 문화’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책 내용을 요약·정리해 주는 오디오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21일 팟캐스트 업체 팟빵에 따르면 팟빵 앱을 내려받은 이용자 수는 2015년 170만 명에서 올해 32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영화(403개), 책(623개)을 다루는 방송 채널만 1000여 개에 달한다.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운영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구독자 수 11만5000명으로 지난 3년간 6배 급증했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진행하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도 6만 명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성우 윤소라 씨가 책의 일부를 읽어주며 소개하는 ‘소라소리’는 2만 명이 구독 중이다. 이들 방송은 책 내용을 요약해 주면서 줄거리 이해가 쉽도록 해석을 덧붙인다. 이 같은 ‘독서 팟캐스트’ 인기는 우리나라 성인의 34.7%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발표(국민 독서실태 조사)와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젊은 층이 문화 소비 욕구를 전략적으로 해소하려는 현상이라고 풀이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물리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즐기기에 여유가 부족한 상황에서 누군가 이미 선택한 것을 검증됐다고 보고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서머리 문화는 영화와 드라마 소비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유튜브에서 영화 제목만 검색하면 5분 내외로 영화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해설까지 해 주는 채널이 수십여 개 뜬다. ‘고몽’(27만 명) ‘소개해 주는 남자’(11만 명) 등 구독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가는 채널도 여럿이다. 고몽이 2006년 개봉 영화 ‘캐쉬맨’을 요약해 만든 6분짜리 동영상은 조회 수가 460만 건에 달한다. 지난해 인기를 끈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6분 안에 정리해 주는 영상도 조회 수 21만 건을 기록했다.영화 요약 동영상을 제작해 주는 업체도 있다. 영상 전문가 박우성 씨가 창업한 알려줌이 대표적이다. 알려줌은 영화를 홍보하려는 영화사 요청을 받아 이 같은 영상을 제작해 수익을 창출한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임진모 문화평론가는 “짧은 시간 안에 내용을 요약하고 해석해 주는 콘텐츠 소비는 문화적 ‘속성과외’”라며 “원작을 접하지 않고 가공된 콘텐츠만 소비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로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진우/안효주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