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금융화'란 병에 걸린 글로벌 기업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라나 포루하 지음 / 이유영 옮김 / 부키 / 532쪽│1만8000원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팀 쿡은 2013년 초 170억달러를 차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위한 자금으로 써 지지부진한 주가를 부양하고 투자자들을 만족시키려는 이유였다. 당시 애플은 은행에 1450억달러가 넘는 현금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한 건 세계 곳곳의 은행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미국에 들여올 때 부담해야 하는 세금보다 차입에 따른 이자비용이 더 적었기 때문이다.

금융 면에서는 합리적 선택이지만 조세를 회피하려 한 행태는 비판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글로벌 비즈니스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글로벌 경제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라나 포루하는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에서 애플을 대표적 사례로 들며 “미국 기업들의 관심사가 전통적인 기업 활동이 아니라 금융공학을 통한 돈벌이로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말한다.저자는 오늘날 경제시스템이 ‘금융화’라는 병에 걸려 있다고 주장한다. 실물경제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수단이어야 할 금융이 그 자체로 탐욕스러운 괴물이 돼 그 자체의 수익을 우선시하고 연구개발과 같은 장기적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애플이 잡스 사망 이후 시장의 판을 바꿀 만한 기술을 선보이지 못하는 이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찾는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만드는 자(maker)’들이 ‘거저먹는 자(taker)’들에게 예속된 데 있다.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이끄는 사람이나 기업이 고장난 시장 시스템을 활용해 사회 전체보다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테이커’의 범주에는 금융업자와 금융회사, 금융화의 그늘을 알지 못하는 CEO, 정치인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경제시스템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선 메이커와 테이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