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월급 줄어들까 걱정" 사업주 "인력 못 뽑아"… 산업현장 아우성

확산되는 근로시간 단축 우려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 커지나
노동연구원 "제조업 근로자 월급 13% 줄 수도"
중소기업 근로자 "특근 못하면 수당 70만원 ↓"
사업주 "자동화 시설 투자 여력도 없다"
“새벽 3~4시에도 소프트웨어에 이상이 생기면 직원들이 현장에 가야 합니다. 기존 인력으로 주 52시간 이하 근무는 불가능해요.”(경기 성남의 한 업무용 운영체제 개발업체 사장)

“월급 300만원 중에 70만원이 특근 수당인데요, 월급이 줄어들까 걱정입니다.”(경기 하남의 한 건축업체 직원)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28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저녁 있는 삶’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를 어기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업주는 추가 인력 충원 부담이 크다. 근로자는 야근·연장 소득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이다. 공공기관과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사업장은 직원의 업무강도가 높아지지만 월급은 줄어들 것이란 불안이 현장 근로자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제조업 근로자 “월급 준다” 아우성

한국노동연구원이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제조업 근로자 40만9000명의 임금을 분석한 결과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면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296만3000원에서 257만5000원으로 38만8000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13.1% 감소하는 셈이다.주 52시간 이상 일하는 서비스업 근로자 4만7000여 명도 월급이 302만7000원에서 270만9000원으로 31만8000원(10.5%) 감소한다.

산업 현장에선 조사 결과보다 더 많은 근로자가 임금 감소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대다수 국내 사업장이 기본급은 적고 수당을 많이 주는 ‘기형적인’ 임금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야근이 잦은 중소 제조업체는 월 70만~80만원 이상 특근·야근 수당을 주곤 한다.

경기 중부권에 있는 한 건자재업체도 그런 사례다. 이 회사는 최근 노사가 야근을 없애고 공장 가동시간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해야 하는 만큼 미리 대비하자는 취지였지만 근로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월급이 320만원에서 240만원으로 80만원이나 줄기 때문이다. 이 회사 K 사장은 “회사가 일부 임금을 보전하기로 해 겨우 합의했다”며 “결국 생산량은 20% 줄었는데 임금 비용은 12.5%만 감소해 회사에는 손해”라고 했다.◆“사람 구하기도 어려운데…”

사업구조상 초과 근로가 잦은 사업장은 비상이 걸렸다. 월급을 더 준다고 해도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도금, 열처리, 주물 등 이른바 ‘뿌리 기업’이 대표적이다. 열처리 업체인 S사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생산직 인력 50~60명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 회사 사장은 “야간 생산직에게 월 420만원을 주겠다고 인력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한 명도 없다”고 푸념했다. 수도권 도금업체 S사장은 “인력 충원이 어렵고 자동화시설에 투자할 여력도 없다”며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종 특성상 성수기에 일이 몰리는 의류, 아웃도어용품 업체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일부 기업은 공장 해외 이전을 준비 중이다. 수도권의 한 아웃도어업체 사장은 “1년 중 6개월은 바쁘고, 6개월은 한가한 업종 특성상 성수기에는 초과근로가 필수”라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초과근로가 어려워진 만큼 범법자가 되기 싫으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 국회 통과 소식을 접하고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탄력근무제 확대되나

중소기업들은 특별연장근로 등 정부 보완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날 통과된 근로시간 단축 법안은 ‘종업원 30인 미만 기업’에 한해 노사가 합의하면 2022년까지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시간을 허용하기로 했다. 산업계에선 “이를 전체 중소기업으로 확대하고 시한도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탄력근무제가 확대 적용될지도 관심사다. 탄력근무제는 시기에 따라 업무량이 달라지는 산업 특성을 고려해 최대 근로시간의 제약을 일정 기간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산업계는 현재 ‘2주(취업규칙 규정 시)’ ‘3개월(노사합의 시)’로 돼 있는 탄력근무제 산정 기간을 1년 단위로 고쳐 생산 차질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심은지·조아란 기자/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