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단축' 앞둔 영화계… "중소영화 괴멸" vs "근로감독 강화"

제작사 "제작비 20∼30% 늘어날 것…대작영화만 살아남아"
노조 "스태프 '열정페이' 더는 안돼…제작 관행 바뀌어야"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놓고 영화계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개정안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했으며, 근로시간 제한을 받지 않고 장시간 근로를 시킬 수 있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26개 업종에서 5개 업종으로 축소했다.

영화제작 및 흥행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개정안이 시행되는 오는 7월부터 영화제작현장에서도 근로기준법 원칙에 따라 주당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 근로가 불가능해진다.영화 제작자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제작비 상승이 불가피해 중소영화 제작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반면, 노조 측은 "근로자의 끝없는 이해와 열정만을 강요하는 것은 이제 타당하지 않다"며 개정안이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중저예산 영화 괴멸…마땅한 대책 없어"
제작자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영화 제작비가 편당 20∼30%, 많게는 배 이상 들 것이라고 우려한다.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의 최정화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영화 작업은 눈에 보이는 과정과 보이지 않는 과정이 있다"면서 "예를 들어 한 장소에서 이틀간 촬영한다면 그 장소를 세팅하기 위해서 적어도 2일의 준비 기간과 1일의 철수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이러한 작업을 일방적으로 주 5일, 하루 12시간으로 묶어버리면 결국 준비하는 팀과 현장을 운용하는 팀을 나누어서 운용하거나(인력 2배 충원) 현장을 주 2회 정도로 축소 운용(제작 기간 2배 연장)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영화 평균 상업영화(순제작비 60억 원 규모)의 평균 제작 기간은 현행 3.5개월에서 5개월 정도 늘어나거나, 현재 70∼80명에 달하는 스태프가 100명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결국, 제작비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최 대표는 "이는 곧 100억 원대 텐트폴 대작영화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생태계를 조장하게 될 것이고, 중저예산 영화들은 서서히 괴멸되어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소속 제작자들은 오는 28일 한자리에 모여 대책 마련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법 시행은 의무적인 만큼 마땅한 대안은 없는 편이다.

최 대표는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예산을 더 따오던가, 아니면 돈이 덜 들어가는 방향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영화제작 관행 바뀌어야…근로감독 강화 필요"
그동안 줄곧 특례업종 폐지를 요구해왔던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개정안 시행과 함께 영화제작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 측은 "그동안 '한국영화현장의 특수성'을 들며 위법한 영화제작 관행을 당연시했는데, 이제는 타당하지 않다"며 "법이 개정된 이상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명예 근로감독관제' 도입 등을 통해 현장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6 영화스태프 근로환경실태조사'에 따르면 1주일 평균 근로일수는 5.45일, 1주 평균 근로시간은 12.7시간이었다.

노조 측은 "영화 노동자는 일주일 평균 69.2시간, 월평균 300시간 일하면서도 연평균 1천970만원(월 164만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면서 "업무상 뇌혈관, 심장질병 등에 노출된 만큼 영화제작 현장의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진위는 최근 펴낸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특례제도 개정과 영화산업' 보고서에서 "영화근로자의 근로환경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명분을 외면하는 것도, 한국 영화제작 현장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모두 타당하지 않다"면서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응한 정책적 방안을 찾기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이어 "법 시행 이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작 기간 증가나 제작비 상승에 관한 합리적 예측치를 산출한 뒤 그에 따른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