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의료 빅데이터 사업 '제각각'… 가장 시급한 규제 완화엔 '미적'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3개 부처가 '따로따로' 진행
'실적 보여주기' 경쟁 논란도
한곳에 모일 데이터, 분산 우려
‘39개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빅데이터 구축 사업에 112억원 투입’ ‘25개 의료기관 빅데이터로 인공지능(AI) 닥터를 개발하는 사업에 357억원 투입’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의료기관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에 103억원 투입’….

올 들어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가 각각 발표한 의료 빅데이터 사업들이다. 산업부는 의료통계 구축에, 과기정통부는 AI 개발에, 복지부는 공공데이터에 집중한다고 했다. 이들 사업 목표는 모두 병원 안에 있는 의료정보를 통합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을 개발하는 것이다. 의료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방식으로 모아 의료기관 안에서만 의료정보를 사용하도록 규제한 의료법을 피해가는 방식까지 비슷하다.이 때문에 예산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의료기관에서조차 “정부의 의료 빅데이터 사업이 부처별 예산 나눠 먹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빅데이터 사업의 성패는 양질의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데 달렸다. 이 때문에 중국은 중앙 정부가, 미국은 국립보건원(NIH)과 주 정부 등이 나서 헬스케어 빅데이터를 한곳에 집중해 연구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딴판이다. 부처마다 다른 기관을 선정해 경쟁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한곳에 모여야 할 데이터가 오히려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규제 완화는 뒤로하고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도 있다. 고려대의료원 정밀의료병원정보시스템 개발사업단은 사업 상용화에 걸림돌이 될 만한 규제 이슈가 15개에 이른다고 토로했다. 개인 의료정보 규제 때문에 의료기관은 물론 정부조차 ‘어떤 환자 데이터를 병원 밖에서 사용해도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일선 현장에서는 불법인지, 합법인지 경계라도 그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규제를 풀어 산업이 자생하는 토양을 조성하는 것인데 연구자들에게 푼돈만 주고 있다”는 의료계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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