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에 문화계 '속수무책' '전전긍긍'
입력
수정
지면A30
특례업종 제외 방송·영화계노동시간을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노동시간 단축’ 시행일이 2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문화예술계는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당초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는 특례업종이었던 방송·영화업계는 지난 3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 충격파가 예상돼 시행에 1년 유예를 받았지만 시간만 벌었을 뿐 마땅한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당장 7월부터는 주말을 포함해 근무시간을 68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작품이 있을 때 일이 몰리는 공연업계도 부작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시행 1년 유예받았지만
'주 68시간' 적용에도 곤혹
근로계약 맺지 않은 하청구조
노동 단축 대상인지도 불분명
공연계, 제작비 급증 우려
인력 2~4배 충원 불가피
◆특례업종 제외, 대책 없는 현장CJ E&M과 CJ CGV는 지난달 14일부터 하루 8시간 근무 후 PC 화면이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를 시작했다. 연장근무는 부서장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사업부별로 집중 근무시간을 최소 2시간 이상 정하고 이 시간대에는 회의, 흡연, 티타임을 자제하는 ‘3무(無) 운동’도 펼치고 있다. 롯데시네마와 CJ CGV는 PC오프제뿐 아니라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직원들이 월 단위로 출근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제작 현장 인력이다. CJ E&M은 “방송직군과 특수직군은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 방침을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를 지켜야 한다.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당장 올 7월부터는 주말을 포함해 최대 68시간만 일해야 한다.규모가 영세한 방송 관련 제작사는 변변한 대책을 찾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다. 2015년 기준 국내 방송영상독립제작사 중 절반 이상(55.6%)이 직원 10명 미만이다. 유예기간은 길지만 주 68시간 제한도 업계 현실에서는 맞추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또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협력업체 순으로 형성된 위계구조 하에서 대부분 현장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적용 대상인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는 얘기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을 피해갈 수 있는 이 같은 독립 제작사들 인력을 활용하는 편법이 나온다면 근로시간 단축의 의의를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수개월 이상 집중적인 업무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특정 기간 내 평균 근로시간만 지키면 되는 탄력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최대 3개월이고 노사 합의도 거쳐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 기간을 감안하면 이를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작품 질 하락, 안전사고 우려
특례업종이 아니어서 다음달 당장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해야 하는 공연업계는 더 막막하다. 통상 2~4일간 집중적으로 공연이 있어 공연을 앞두고는 하루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소속 단원의 연습시간도 업무에 포함된다. 주말은 공연이 많아 근무 시간이 더 길어진다.
방법은 인력을 추가 투입하는 것밖에 없다. 공연업계에서는 주 52시간을 맞추려면 현 인력의 최소 2배, 많게는 4배까지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제작비 부담이 커진다.공연의 핵심 스태프는 수적으로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공연 완성도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결정 이후 시행까지 시간이 빠듯하다 보니 인력 해법이나 이를 위한 예산도 챙기지 못했다”며 “시행되면 어떻게든 맞춰야 하니 작품의 품질 저하나 공연장 안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간에도 쟁점이 될 만한 사안에 대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도 근로감독 후 판단할 수 있다는 모호한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노무사 자문을 받아 가이드라인 작성을 준비 중”이라면서도 “대표 단체와 학계 전문가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지만 워낙 분야가 다양하고 업종별로 사정이 달라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윤정현/김희경/은정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