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압수영장 또 기각… 檢·法 갈등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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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법부 주문형 수사' 안 한다"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촉발된 검찰의 사법부 수사가 양 조직의 자존심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압수수색 단계에서부터 영장 기각과 청구를 반복하면서 검찰과 법원 간 갈등이 점차 격화되는 모양새다. 벌써부터 법조계에서는 “수사 결과가 부실할 것이고, 신뢰회복이라는 당초 사법부의 목표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원 "수사 이외 자료 못준다"
법원 "탈탈 털겠다는 것이냐"
檢 "법원이 무슨 성역인가"
영장 기각·청구…'자존심 싸움'
올 구속영장 기각률 27% 최고
압수·체포 영장도 잇단 기각
◆‘사법부 블랙리스트’ 수사 곳곳 충돌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25일 “어제 청구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처장, 이규진 전 양형실장, 김모 판사 등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오늘 새벽 모두 기각됐다”며 “범죄혐의가 추가됐고 소명자료도 보강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제 법원행정처로부터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인사자료·재판자료·이메일·메신저 등을 제출할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연이은 영장 기각에 대한 불만이 묻어났다. 법원은 검찰이 수사와 관련 없는 법원 내부 자료까지 모두 요구한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대법원 측은 이날 “수사와 관련이 없는 파일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자로서의 책임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이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부터 기각하면서 검찰 수사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법원 허가 없이 할 수 있는 수사도구는 관련자 소환뿐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미 확보한 자료 내에서 검찰이 문제 유무를 밝혀주길 바라고 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검찰이 조직 논리를 앞세워 법원을 이참에 탈탈 털어보려는 것”이라며 “수사 대상이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독립 침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검찰도 물러설 수 없다는 분위기다. 검찰이 사법부의 ‘주문형 수사’를 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자존심 섞인 불만도 흘러나온다. 한 중앙지검 현직 검사는 “압수수색 영장부터 기각하는 건 ‘우리가 준 것으로만 수사해’라는 것인데, 법원이라고 ‘성역’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올해 검찰 영장 기각률 26.8%검찰과 법원의 불편한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 들어 양 조직 간 불편한 관계는 잦은 구속영장 기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국민 법 감정을 무시한다” “도저히 납득 불가” “제대로 안 본 것 같다” 등의 거친 표현이 영장 기각을 놓고 올해 검찰에서 나온 말들이다. 지난 4일 법원이 ‘양대노조 방해 의혹’과 관련,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은 ‘다른 기준이 있는 것 아니냐’며 법원을 공격하기도 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등 ‘굵직한’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례가 쌓이면서 양 조직 간 갈등이 깊어졌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실제 올 들어 검찰의 영장 청구 4건 중 1건은 기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검찰의 영장 청구 2038건 중 546건(26.8%)이 기각됐다. 기각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신청하는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도 늘었다. 올해 5월까지 3305건의 압수수색 영장 중 173건이 기각돼 5.2%의 기각률을 기록했다. 연평균 2~3%대 기각률임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다. 체포영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까지 법원의 검찰 체포영장 기각률은 3.7%로 사상 최대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광범위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기본권 침해 여지가 있다”며 “무소불위 검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역할을 법원이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윤상/안대규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