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포퓰리스트에겐 추종자만이 '국민'이다"

얀 베르너 뮐러 《포퓰리즘은 무엇인가》
포퓰리즘(populism)은 흔히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책의 현실성을 따지지 않고 선심성 정책을 내놓는 정치형태’로 규정된다. 포퓰리즘을 대중영합주의로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정책이 포퓰리즘의 산물이고, 누가 포퓰리스트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모든 정책과 정치 행위는 어느 정도 대중을 의식하는 포퓰리즘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얀 베르너 뮐러 미국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교수가 펴낸 《포퓰리즘은 무엇인가(What is Populism?)》는 포퓰리즘 전반에 관한 유익한 관점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뮐러 교수는 프랑스 국민연합(RN·옛 국민전선) 등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포퓰리스트 판별법은 무엇인지, 포퓰리즘 정권이 집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등을 자세히 알려준다.
뮐러 교수가 꼽은 포퓰리스트의 공통점은 반(反)엘리트주의, 반다원주의, 편 가르기다. “포퓰리스트는 기득권 엘리트들을 부패하고 부도덕한 집단이라고 매도한다. 그러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강변한다. 자신을 반대하는 정치 세력은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 반다원주의적 태도도 취한다. 포퓰리스트는 끊임없이 ‘국민’을 찾고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국민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에겐 추종 세력만이 ‘진정한 국민’일 뿐이다.”

정권 실정을 외부 탓으로 돌려뮐러 교수에 따르면 포퓰리즘 정당은 집권해도 자신들이 희생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다수 세력이 돼 막강한 권력을 거머쥐었음에도 늘 학대받는 ‘정의로운 소수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이전 정권들이 내놓은 정책들은 청산해야 할 ‘반민주·반서민’ 정책이다. 자신의 실정(失政)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포퓰리즘 정권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극심한 경제난의 원인을 부르주아 세력의 음흉한 방해 공작 탓으로 돌렸다. 국내 반대자 탓을 하기가 마땅치 않을 때는 ‘미 제국주의자의 책동’을 들고나왔다. 이처럼 포퓰리스트가 적(敵)으로 삼는 대상이 동나는 법은 없다. 그 적은 언제나 국민 전체의 적이다. 차베스는 2002년 우파 주도로 총파업이 일어나자 이렇게 선언했다. ‘이것은 차베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의 대립이 아니다. 애국자와 반역자 간 전쟁이다.’”

포퓰리스트는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연출을 즐긴다. “14년간 장기 집권했던 차베스는 서민의 걱정거리를 들어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포퓰리스트들은 친근한 정치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뮐러 교수는 국가 권력의 사유화, 지지 세력에 대한 퍼주기 정책, 반대세력 탄압 등을 포퓰리즘 정권의 세 가지 통치 기법이라고 설명했다. 국가 권력의 사유화는 장기 집권을 위한 대대적인 권력구조 개편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포퓰리즘 정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에 맞춰 국가를 재창조하려고 한다. ‘진정한 국민’의 의사를 법제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영구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과 법률을 뜯어고치려고 한다.”

헌법 개정으로 장기집권 시도

무차별 복지로 대변되는 ‘국가 후견주의’와 반대파에 대한 ‘차별적 법치주의’도 세계 모든 포퓰리즘 정권이 취하는 공통적인 통치 기법이다. “포퓰리즘 정권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 대가로 유·무형의 반대급부를 지급한다.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구호는 국가 후견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에만 유독 엄격한 ‘법치주의’ 잣대를 들이대 모질게 다룬다.”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폐해들은 권위주의적인 독재정권에서도 나타났다. 하지만 포퓰리즘 정권에서는 더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부정부패라고밖에 볼 수 없는 행위마저 ‘국민의 이름’으로 양심의 거리낌 없이 자행된다는 게 뮐러 교수의 지적이다. “포퓰리즘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정권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도덕적 가치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라는 사회주의 전술·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정당인 폴란드의 법과정의당은 ‘국민의 이익이 법에 우선한다’며 영구 집권 목표를 숨기지 않았다. 정실인사와 부정부패가 만연했지만 이들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이 직접 통치하게 하자!’는 민주주의 최고의 이상을 실현시켜주겠다며 반대 세력 탄압을 노골적으로 자행했다. ”

악성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듯 악성 포퓰리스트들은 자유민주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포퓰리스트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늘 깨어 있는 수밖에 없다. “대중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이 21세기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이다. 포퓰리즘은 면역도 생기지 않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이자 좀처럼 끊기 어려운 마약과 같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면 포퓰리즘 때문에 피폐해진 중남미 사례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