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기업이 위자료'…급하게 제안한 강제징용해법에 日'부정적'(종합)

한일 기업 출연해 확정판결 받은 피해자에게만 위자료 지급
日외무성 "한국 제안, 해결책 안 돼"…피해자·한국기업 의견 수렴도 없어
외교부 "강제집행이냐·화해냐 선택의 문제…日정부 진지한 검토 희망"
정부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 7개월여 만에 '한일기업이 위자료를 부담한다'는 내용의 대안을 일본에 제시하면서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관계가 정상화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그러나 피해자와 한국·일본 기업의 사전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고 일본 정부와도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제안한 것이어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부는 당장 "해결책이 안된다"는 부정적 반응을 내놓았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안은 강제징용에 책임이 있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19일 외교부에 따르면 위자료는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에게만 지급된다.

현재까지 3건의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금액은 총 13억6천만원으로, 일본제철이 4억원, 미쓰비시중공업이 2건 합계 9억6천만원이다.

현재 대법원에는 후지코시, 히타치 등의 일본 기업을 상대로 총 7건의 사건이 계류된 것으로 파악됐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외교부의 생각이다.

한국 참여 기업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한일 기업 간 출연 비율도 참여 기업들이 정하도록 할 방침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존중, 피해자들의 권리 실현, 국제규범 존중 등을 두루 고려해 내놓은 대안임을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이 제안이 특히 고령의 피해자를 조속히 구제해야 하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이 방안을 수용하면 외교적 협의를 통해 청구권협정에 대한 양국간 입장차를 논의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그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 피해자 고통과 상처의 실질적 치유 및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제반 요소를 감안해 신중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인 '외교적 협의',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등을 잇달아 요청했을 때도 이를 수용도 거부도 하지 않은 채 "신중 검토" 이외의 입장은 내놓지 않았다.

그러던 정부가 이번에 갑자기 대안을 내놓은 것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한일관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고민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정부는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계기의 한일정상회담도 이 문제와 연계해 무산시키려는 태도를 보이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연일 한일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미국을 향해 '우리도 고민하고 있고 할 일을 한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이달 말 한미정상회담을 의식해 내놓은 방안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제안 배경이 어디에 있든 '한일기업이 공동 출자한 재원으로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정부의 제안이 한일관계를 뒤흔든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일본 정부의 입장이 관건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는 모두 끝났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실제 일본 외무성의 오스가 다케시(大菅岳史) 보도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정부의 제안에 대해 "한국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이 될 수 없어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전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반응을 예단하지 않겠다"면서 "일본 측의 진지한 검토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일본 기업으로서도 화해의 취지를 생각하면 참여할 수 있는 요인이 충분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거부한다면 일본 기업과 별도로 접촉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와 한국 기업의 입장도 주목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일본에 이런 제안을 하기 전에 피해자나 한국 기업과 따로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피해자 의견 수렴 없이 설립해 문제가 됐던 화해치유재단과 비슷한 행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상당 부분이 당사자 의견에 맡겨서 세부 내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사인 간 문제라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결국 피해자도 일본 기업도 강제집행으로 가느냐, 아니면 자발적 기여를 통해 화해를 이루느냐의 선택의 문제"라며 "가능한 강제집행 조치보다 당사자 간 화해를 통해 해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지난 5월 법원에 압류 자산을 매각해달라는 '매각명령 신청'에 들어가 이르면 7월 이전에도 실제 매각이 진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연합뉴스